이만기 인문대 교수ㆍ서어서문학과

3ㆍ1 서울대인 비상총회’ 이후 총학생회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투쟁에 대해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학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교육투쟁의 대표적인 쟁점인 ▲상대평가제 폐지, 학점취소제 도입 등 학사관리 엄정화 반대 ▲학부대학-전문대학원 체제 전면 재논의 ▲등록금 인상분 반환에 대한 서울대인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학부대학에 대한 단상(이만기 인문대 교수ㆍ서어서문학과)

이 글의 내용은 학부제에서 더 나아가 학부대학과 전문대학원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대학교의 장기발전계획에 대한 무책임한 문제제기일 수도 있겠지만, 기초학문의 전공교육을 되살리기 위한 순수한 취지에서 작성되었음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소비자 위주의 교육을 표방하는 학부제의 근본취지는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교양교육을 받게 하여 세계화 시대에 맞는 폭넓은 사고력을 갖춘 고급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취지에 무색하게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학부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광역모집단위로 입학한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 중의 하나는 소속감이 없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소속된 ‘학과’는 다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주된 준거집단이다. 학과라는 공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무한한 ‘이익’은 학생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소중한 재산이 아닐 수 없으며 대학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같은 학번 동료끼리, 선후배사이에 그리고 학생과 교수가 각자의 존재를 서로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공간은 바로 학과 내지 각 전공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것도 학생이 입학하는 바로 그 시점에 형성되어야 한다.

둘째, 학부제의 장점으로 꼽히는 것 중의 하나는 학생들이 전공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광역모집으로 들어온 대부분의 학생들이 전공을 거의 결정하여 입학한다는 것이다. 결국 다양한 교양교육과 전공탐색을 위한 1~2년간의 기간은 이미 결정한 전공에 진입하기 위한 준비기간밖에 되지 않으며 이들에게는 이 기간이 시간낭비로 비춰질 수 있다. 물론 학부제는 원하지 않는 전공에 진학했을지도 모를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찾도록 하는 친절한 배려도 한다. 그러나 학과제로 입학하더라도, 학생들은 전과제도나 부전공, 복수전공과 같은 여러 보완장치를 통하여 자신의 전공을 변경하거나 다양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학부제가 가져온 전공교육의 부실화이다. 대부분의 어문계열 교수들은 예전에 1학년 전공학생들에게 가르쳤던 내용을 지금은 2학년 혹은 3학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고 한다. 이는 바로 학부제 시행으로 인한 전공교육의 부실화에 다름 아니다. 학부제 실시로 인한 전공교육의 부실화는 대학원의 황폐화로 이어질 위험성을 항상 내포한다. 기초학문의 후속세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재정지원보다는 기초학문 연구원들의 장래를 보장해주는 제도적인 보완책이 한결 더 시급한 현실이라고 본다. 이러한 보완책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대학 학부 4년 과정은 장래가 보장되는 전문대학원으로의 진학을 위한 도구 공간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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