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대학원장 인문대 교수ㆍ철학과

우리나라의 대학원은 전체적으로 부실이라는 판정 이외의 다른 평가를 내릴 도리가 없다. 우선 내실을 제대로 갖출 수 있을 만한 시간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대학교 개교와 동시에 출범한 우리 대학원은 내년이면 꼭 60년의 역사를 갖게 된다. 학문의 세계에서 두 세대 남짓한 시간은 학통이 겨우 형성될까 말까한 정도의, 그야말로 일천한 역사에 불과하다. 더구나 본교 이외의 대부분의 대학원은 사실상 한 세대의 나이도 들지 않은 신생아 단계로서 ‘일천하다’는 표현조차 부적절하다.

오늘날 대학원의 기능이 학문 후속세대의 양성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대학원 제도를 베껴온 미국의 경우처럼 대학원 수준의 교육기관은 꼭 학자만이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러 종류의 고급 전문 인력의 양성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미국의 professional school에 해당하는 우리의 전문대학원이 바로 그런 기능을 전담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학사과정 4년 정도를 완성교육과정으로 이해해 왔으며, 그 이상의 공식적인 전문인 양성과정을 설치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다. 최근 법학전문대학원에 관해 논란이 있었던 배경에도 바로 그런 사정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니까 전문대학원도 일반대학원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과정을 건축하는 중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므로 준공 이전에 부실 운운하는 것이 성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건축 중에도 좀 더 기다려보아야 한다는 식의 변명으로는 감출 수 없는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것은 한마디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대학원의 규모를 키워놓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원의 양적 규모는 단연 세계 정상이다. 삼년 전 통계로 인구 천 명 당 우리나라의 대학원생 수는 6명을 넘어서 당시 4명 수준의 미국을 저만치 앞질러 있었다. 지난 세기 후반부터 대학의 교육과 연구에 소요되는 비용은 빠른 속도로 높아지는 추세다. 이런 사정 하에서는 어떤 나라라도 우리나라와 같은 규모의 대학원의 질을 제대로 관리해내기는 어렵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의 대학원은 기실 준공 이전부터 부실공사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재학생 만 명 규모의 본교 대학원도 세계적으로 극소수의 큰 축에 든다. 이런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제한된 자원을 얇고 넓게 배분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 당연한 결과가 바로 앞서 나온 기획기사에서 지적된 열악한 여건인 것이다.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재정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한다 해도 덩치를 줄이지 않는 한 여건 개선의 속도가 악화의 속도를 능가할 것 같지 않다.

더욱이 국제적인 상황은 우리의 사정을 한층 더 어둡게 하고 있다. 지식기반 사회로의 진입이 본격화되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지식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인력의 확보를 위해 국가의 장벽을 낮추고 외국의 우수인력을 마구 흡인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재들에게도 미국의 유명 대학원에서 훨씬 더 좋은 여건 속에서 공부하고 훨씬 더 신용있는 학위를 취득한 후에 훨씬 더 나은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전망은 매력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대학원의 연구실을 지킬 차세대 학문의 주자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공동화가 초래되고 -특히 이공계의 경우에 더 두드러진다- 결국은 고급 지식에 관한 한 우리는 계속 수입에만 의존하면서 종속적 위치에 머물러 있게 되리라는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 대학에 ‘미국제’ 박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상을 소위 자생학문의 장래와 연관시켜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정책적으로 국내 박사에 일정 지분의 교수자리를 할애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있다. 논의의 여지가 있는 제안이지만 일종의 고육지책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방안을 채택하더라도 우리 대학원의 교육ㆍ연구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일단은 방만한 규모를 좀 더 집중적인 지원과 엄정한 질 관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정리하는 일을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 규모를 줄이더라도 내실을 제대로 갖추어야지 그렇지도 못한 상태에서 계속 우수한 인재를 외국에 뺏기면서 억지로 자생학문을 키우겠다고 한들 그것은 진정한 주체의식도 애국심도 아닌 생고집으로만 외쳐대는 공허한 구호로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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