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저, 푸른숲) 발간

“나는 아직도 1997년 12월 30일을 기억한다. 택시가 막 강변도로로 진입하려고 하는데 라디오에서 아나운서의 무감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날 아침 열 시, 전국 구치소에서 몇 십 년 만에 최대 규모인 23명이 처형됐다는 소식이었다.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하고 올라와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행복이라고 믿었던 행복이 정말 행복일까…”

『봉순 언니』 이후 7년 만에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낸 작가 공지영 씨의 말이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소재를 깊은 시선으로 바라봐


사형수와 상처받은 이의 만남은 영화나 소설에서는 이제 식상한 소재가 됐다. 정치[]사회적으로는 사형제 존폐론과 맞물려 민감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을 펴드는 순간 ‘요즘 이런 소재를 글에서 얼마나 잘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생길 법도 하다. 하지만 정작 작가의 문제의식이 인물들의 소소한 언행 속에 치밀하게 내재됐음을 이해하고 나면 사정은 달라진다. 소설가 황석영 씨도 그래서 “쉽게 읽히지 않았다”는 평을 한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은 강간, 살인죄로 사형수가 된 27세의 청년 정윤수와 냉소적인 30세의 대학교수 문유정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증오와 보복만을 배워오다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윤수,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15세 때 받은 상처를 품고 자신까지도 사랑하지 못하는 유정. 둘은 ‘버림받음’의 체험과 자포자기적 태도, 그리고 이로 인해 사랑의 가치를 모른 채 살아왔다는 점 등에서 닮아 있다.

유정의 고모를 통해 만나게 된 이들은 매주 구치소 접견실에서 만나며 일명 ‘진짜 이야기’를 나눈다. 언제 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사형수에게는 매번의 만남이 마지막 만남일 수 있기에 그들의 대화는 가장 깊은 곳에 내재된, 자신도 모르는 욕망의 발현일 수밖에 없다. 작가가 굳이 사형수 이야기를 택한 건, 결국 삶에서 가장 절박한 가치가 사장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윤수와 유정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삶에 대한 애착을 새삼 발견해간다. 작가는 작품을 쓰기 위해 여러 사람을 취재하던 중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며, 다정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기존의 작품 경향과 거리뒀다는 평가는 오해


1988년 등단 이래 꾸준히 작품을 발표한 공지영 씨는 대개 억압받는 여성들의 이야기, 또는 과거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하지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기존의 작품 경향과는 거리가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오래전부터 이 작품을 구상해왔다”며 “그동안 내 작품세계가 너무 제한적으로 규정돼온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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