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최영찬 농생대 교수ㆍ농경제사회학부

내가 대학을 다닌 1970년대 후반은 이성과 정의가 부정되던 암울한 시기였다. 지금의 학생들처럼 고등학교까지 그저 진학을 위한 도구로 존재했던 내가 대학에 들어와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당연히 나를 찾는 일이었고 자연스럽게 학생운동단체에 가입하게 되었다. 독서와 학습은 당시 학생운동의 주요활동이었고 1학년 역사, 2학년 경제, 3학년 정치 및 사회, 4학년 사상 및 철학에 대해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양서에 대한 목록이 있어서 비교적 고생하지 않고 좋은 책들을 접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소설, 잡지, 전문지 등을 가리지 않고 많이 읽었다.

경험에 비추어 나는 대학 새내기들에게 먼저 역사공부를 권하고 싶다. 입학한 3월에 내가 제일 먼저 접한 책이 안병직 교수의 『3.1 운동』이었다.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경제, 민족운동, 단재의 민족사관들도 비어 있는 머리를 채우기에 충분한 매력을 주었지만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던 최남선과 33인 중 일부의 친일행각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천도교주 손병희의 기회주의적 처신과 친일행위는 20살이 될 때까지 내가 받았던 모든 교육은 물론 내 사고에 대해서 의심하고 부정하게 되는 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교과서에는 손병희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요 종교지도자로 묘사하고 있었고, 우리는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역사공부를 새로이 시작하기 위해 나는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갱를 통해 진보적인 역사관과 자아를 기르게 되었다. 이기백 교수의 『민족과 역사』를 읽으며 실증주의와 식민사관을 넘어 민족주의 사관을 이해하고 주관에 대한 도피를 경계하였다. 이우성, 강만길 교수의 『한국의 역사인식』을 읽으며 우리 역사를 제대로 돌아보게 되었고, 『분단시대의 역사인식』(강만길), 『한국근대사』(홍이섭), 『해방 전후사의 인식』(한길사)을 읽으며 근대와 현대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아쉬운 것은 유신말의 극렬한 언론 및 문화탄압으로 근현대사에 대한 공부를 깊이 있게 하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역사를 보는 눈을 뜨게 되자 더욱 책읽기가 재미있어졌고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찾게 되었다. 전공분야인 경제사, 농업사의 공부는 물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아놀드 하우저), 『한국근대 미술사』(김윤수), 『미국노동운동비사, 인간의 벽』(일본 교원노조 운동사), 『페다고지』(민중교육 운동) 등을 통해 문학, 예술, 교육, 노동운동 등의 분야를 바로 보는 시각을 기르고 소설과 잡지 등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더 구체적으로 역사와 사람들에 대해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중에서도 리영희 교수의 『8억 인과의 대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은 사회나 역사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큰 범죄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특히 모택동과 조카의 대화는 내가 늘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는 좋은 일화이다. 규정에 따라 모두 의무적으로 대학 내에서 단체 기숙을 하게 되어있는 조카가 주말마다 외박하는 학생에 대해 비판을 늘어놓자, 모는 웃으며 그가 크게 될 학생이라고 칭찬을 하였다. 혁명이란 造反, 즉 뒤집어 보는 것이니 모두가 다 규정만을 고집한다면 뒤집어 다시 생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혁명도 없다는 것이다.

역사에 눈을 뜨지 못하면 나도 돌아보지 못하고 뒤집어 생각해 볼 수도 없다. 억압된 교육제도에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도 얻지 못했을 새내기들에게 먼저 역사공부를 권한다. 손병희를 뒤집은 일이 오늘날 내가 흔들림 없이 참으로 사는 길을 가게 한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좋은 책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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