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 (방송통신대 교수ㆍ국어국문학과)


신화는 그동안 ‘비합리적인 옛날 이야기’로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합리성을 강조하는 오늘날, 신화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이는 신화의 재해석을 통해 그 지역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관계가 있다.
『대학신문』에서는 서양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일본,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한국 등 아시아 지역의 신화를 통해 그 문화권에서 발생한 사회문제들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일본의 신화는 흥미롭다. 신화 자체의 발상뿐 아니라 『일본서기』나 『고사기』와 같은 관찬 역사서의 첫머리에 신화적 기술이 장황하게 펼쳐진 것이 그렇다.

『고사기』의 시작은 창세신화로 시작된다. 하늘과 땅이 처음 생겨났을 때, 아메노미나카누시노가미(天御中主神)에서 아메노도코다찌노가미(天之常立神)까지의 조화삼신을 아우른 별천오신(別天五神) 등의 신격이 등장하고 구니노도꼬다찌노가미(國之常立神)에서 이자나키노가미(伊耶那岐神)와 아지나미노가미(伊耶那美神)까지 신세칠대(神世七代)가 기술된다. 남매신이자 부부신인 이자나키노가미와 아지나미노가미가 일본 국토 가운데 아와지시마(淡路洲)를 맏아들로 낳았는데, 이를 두 신이 반가워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이자나키노가미의 왼쪽 눈에서 아마테라스오호미가미(天照大御神)가, 오른쪽 눈에서 쯔쿠요미노미꼬토(月讀命)가, 그리고 그의 코에서 타케하야스사노오미꼬토(建速須佐之男命)라고 하는 삼귀자(三貴子)가 탄생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마테라스오호미가미는 일왕가의 직계 조상신이다.

남매혼을 통해 인류가 시작하고 인간 세상을 재창조했다는 설정은 보편적이지만, 이를 관찬 역사서에서 공식화한 것은 흥미롭다. 창세신화에서부터 장황하게 민족의 역사를 풀어내는 방식은 예외적이고, 창세신의 계보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신이 한 국가 왕실의 직계 조상신으로 확정된 것 역시 독특하다. 특히 국토창조신이 처음 탄생시킨 맏아들을 꺼렸다는 설정은 다른 민족의 사례에서는 찾기 힘들다. 혹시 ‘담로주’가 백제의 해외영토인 ‘담로’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관찬 역사서에 창세신화를 공식화함으로써 자기네 민족의 연원을 극단적으로 소급한 기술방식은 그 이면에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온전한 국가의 성립을 늦게 경험해 한국과 중국을 의식한 역사찬술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창세신화가 일본의 『일본서기』나 『고사기』의 첫머리에 등장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창세신의 내력을 근본으로 삼아야 자기네 민족과 국가의 연원이 대단히 오래됐다고 자랑할 수 있었기에 택한 불가피한 방책인 셈이다. 기원전 660년의 진무천황부터 지금까지 일본 왕실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다고 자랑하는 이른바 ‘만세일계’가 이러한 인식과 잇닿아 있음은 물론이다.

인간세상을 창조한 창세신에서부터 일왕가의 직계 선조신을 단일한 계보로 연결하는 신화적 발상은 온전한 국가를 건설한 시기가 이웃 민족보다 늦거나 온전한 국가를 건설한 경험이 없는 민족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헝가리의 신화 재편양상은 전자에 해당하고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구비전승은 후자에 해당한다. 온전한 체제를 갖춘 나라를 건설한 내력이 자체로 오래됐고 문화적 자긍심을 가진 민족들은 굳이 멀리서 창세신의 후예를 왕실의 조상신으로 견인하는 무리수를 범하지 않는다.

아마테라스오호미가미 신앙 자체가 본디 일본의 민간신앙은 아니었다. 메이지 유신 체제 속에서 신권적 절대성을 앞세워 근대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왕실의 혈통과 국가의 내력을 신격화하면서부터 이 신앙이 국가 권력에 헌신하는 신앙으로서 본격적으로 확대된 사정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연원을 유별나게 강조하는 일본의 성향은 한국과 중국을 통해 고대와 중세의 문화를 받아들인 역사적 사실이 불편한 까닭일 수 있으나, 그런 인식은 공동문명권의 문화사적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니 시정이 필요하다. 기원을 소급하는 전략이 요령을 갖춘 탓에 효과를 거둘 수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 민족의 콤플렉스를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역효과를 가져왔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구석기 유물을 조작해서 민족의 기원을 왜곡하려 했던 연전(年前)의 사건은 단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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