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홍세화(한겨레 논설위원)

김민수 교수 ‘사건’은 21세기 초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한 폭의 풍속도였다. 이 ‘사건’은 내가 루쉰을 다시 읽으며 음미하도록 한 계기가 됐다.

우리는 자주 ‘현대인’연 하거나 ‘진보’연 하는 사람들 중에서 봉건적 가부장제나 연고주의에 흠뻑 물들어 있는 사람을 발견하곤 한다. 봉건 잔재는 사회구성원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도와 구조 속에 온존돼 있다. 그것은 종종 특정집단의 사익추구 의지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100% 관철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김민수 교수 재임용을 둘러싼 어이없는 공방은 근대적 합리주의를 기본 전제로 하는 대학이 예외가 아님은 물론, 오히려 아주 심각한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명백한 물증에도 불구하고 친일 경력에 대한 시시비비가 문제의 핵심처럼 비춰진 한편, 대학사회에 강고히 남아 있는 장인/도제의 봉건적 주종관계는 가려졌다.

합리적 사고를 전제로 하는 교수들이 보여주는 봉건적 인간관계. 이 모순적 행동 양태를 두고 현대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튀스(습속)로 설명하려 들 것이다. 이에 비해 1920년대를 전후해 소설을 썼던 루쉰은 무지와 어리석음을 앞세워 말할 것이다. 나는 묻고 싶다. 한국의 대학교수와 제자가 흔히 보여주는 봉건적 인간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합리적 행동양식을 습득한 엘리트 집단임을 주저없이 자처하는 이들의 봉건적 주종관계에 대한 강박과 열의를 다만 기득권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진보성은 고사하고 존재를 떠받치는 기초적 전제로서의 합리성마저도 힘을 잃게 하는 의식과 행위의 모순이 무지나 어리석음에서 온 것인가. 아니면 이른바 사회화 과정의 산물인가.

물론 무지와 어리석음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계몽의 전통이 없었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화된 문명과 물적 토대의 확장이 곧 무지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억압적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실천적 노력에 의해서 비로소 새로운 관계로 이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조선에 이광수가 있었다면 중국에는 루쉰이 있었다. 1918년에 쓴 루쉰의 첫 소설 『광인일기』에서 ‘광인’은 계몽자다. 계몽자가 광인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을 만큼 암흑시대였고 봉건적 상황이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그 광인에게 루쉰이 가장 먼저 요구했던 것은 스스로 봉건성에 물들어 있음을 자인하라는 것이다. 봉건성으로부터 후세를 구하자고 절규하는 결말 부분은 오늘 우리들의 세계가 루쉰의 세계에서 멀지 않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아Q정전』은 제국주의 침략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식민지 대중을 형상화하고 있다. ‘아Q’라는 인물은 계몽되지 않은 대중의 비열한 속성, 즉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속물근성을 보여주고 있다. 존재를 스스로 배반하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배계급에 대항하기보다는 대중 서로가 싸우고 박해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루쉰은 일생동안 ‘봉건성의 극복과 근대의 실현’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제국주의 세력과 지배계급에 대한 ‘아Q’들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의식의 변화, 무지를 벗어나는 것은 그렇게 지루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우리에게 봉건성의 극복과 근대성의 실현은 여전한 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는 근대를 이미 실현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 이는 다만 대중매체가 준 환상인지도 모른다. 높은 학력과 세련된 생활공간이 일으킨 착각일 수도 있다. 다른 세계와 똑같은 화면과 생활양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단지 환경의 부분적 유사성과 공유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전근대적인 신분제도가 철저히 관철되고 있는 인도에서조차 상류층들은 서구적인 생활환경과 문화를 누리며 스스로를 현대인이라 자부한다. 근대성은 단지 생활 인테리어와 취향의 변화로 대변되는 것이 아님에도 그것만으로 근대성을 의심 없이 자신하는 것이다.

대학사회가 자신들을 속박하고 있는 봉건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에 게으른 배경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합리적 경쟁으로부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갖는 상징성으로 자신들의 무지에 대한 몰이해를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쉰이 광인을 통해 강조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는 명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대학에 잔존하고 있는 봉건성은, 대학이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고 따라서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과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심각하다. 그러나 봉건적 주종관계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기득권 세력에게 탈 봉건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루쉰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를 구분지을 수 없는 것은 비단 이뿐이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