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국제대학원 교수ㆍ국제학과

최근 한국의 국제정치학계 일각에서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원래 이 개념은 미국의 정치학자인 조셉 나이(Joseph Nye)가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원하도록 하는” 힘으로 정의한 개념인데 얼마 전 정부에서 발표한 소위 ‘동북아 균형자론’에 이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한국에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NSC가 최근 배포한 ‘동북아 균형자론’을 설명하는 자료를 보면 소프트 파워를 막연히 ‘문화역량, 민주주의의 역량, 의제설정 역량, 외교력, 국가 이미지’ 등이라고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국제정치학계에서 현재 소프트 파워와 세력균형간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연구한 연구결과가 거의 전무하여 과연 정부가 소프트 파워를 가지고 어떻게 균형자 역할을 하고자 하는지 매우 궁금하다.

한국이 과연 다른 국가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
체계적 연구를 바탕으로 전략 강구해야


소프트 파워는 조셉 나이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고 남이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오게 하는 힘이다. 국제정치에서 이 힘이 필요하게 된 근원적인 동인은 동맹을 주도하는 국가가 동맹 파트너를 다른 편에 뺏기지 않고 지속적으로 자기편에 묶어두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다. 즉 동맹주도국이 파트너를 자기편에 묶어둘 때 공포나 폭력과 같은 강제력을 통하여 묶어두면 그 비용이 엄청나게 커지고, 궁극적으로는 파트너들이 반발하여 반대편으로 이탈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동맹주도국은 비폭력적인 소프트 파워를 통하여 파트너들을 묶어 두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냉전 시기에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두개의 진영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 진영의 형성 및 유지는 상대방에 대한 균형이라는 기제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동맹 파트너들이 더욱 끌리는 국가 쪽으로 이동, 연합하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면이 있다. 즉 미국과 소련의 밀어내는 힘과 끌어당기는 힘이 동시에 작용한 것이다. 밀어내는 힘만 있다면 소련에 비하여 월등히 강한 미국의 힘을 고려,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상당수의 국가가 미국 진영에서 이탈하여 소련 진영으로 말을 바꿔 탔어야 했는데 미국의 끌어당기는 힘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어 그러한 대규모의 이탈이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보이는 소위 끌어당기는 힘이 바로 소프트 파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도 원하니 굳이 진영을 이탈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소프트 파워의 근원에는 자유와 부자의 꿈이라는 민주주의 시장경제가 존재한다. 그리고 거기에 걸맞는 다양한 상징과 문화, 제도들이 개발되었다. 자유의 여신상과 할리우드가 대표적인 상징들이며, 민주주의와 번영을 상징하는 다양한 건축, 담론, 문화들이 생성, 유포되었다. 한국에도 이러한 미국적인 가치들이 널리 전파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한국이 과연 이러한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 어떠한 가치와 상징체계, 그리고 문화적인 매력으로 상대방을 끌어당길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소프트 파워가 동북아 균형자론에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정부는 이에 대해 더욱 체계적인 연구를 한 후에 소프트 파워를 실천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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