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자(종교학과 강사)

포효(咆哮)라는 짐승이 있다. 이 동물은 양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눈은 겨드랑이 아래에 붙어 있다. 호랑이 이빨에 사람의 손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소리는 어린아이 소리 같으나 사람을 잡아먹는다. 포효는 탐욕스러워, 사람을 잡아먹고도 만족스럽지 못하면 제 살을 물어뜯는다고 중국 신화는 이야기한다. 신화는 그 다양한 유형만큼이나 기능도 상이할 뿐 아니라, 하나의 신화라 할지라도 포효처럼 유순함과 광포함, 야만과 문명이라는 대극의 요소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문화적 실재이다.

1989년 6월 3일 중국 천안문광장에서 대학생과 시민들이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대규모의 시위를 했다. 이를 체제 도전으로 간주한 중국 정부는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군대를 투입시켜 시위 군중에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결국 1,400여 명의 사망자와 만 여명의 부상자를 내고 4일 새벽에 시위는 종결된다. 이 ‘6[]4천안문사태’로 인해 중국은 대외적으로는 서방측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한동안 외교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는 부패 관료들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어서,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반정부 민중투쟁의 불씨를 껴안고 있었다. 그 후 1년 뒤 시위의 재발을 우려한 중국 정부는 황제(黃帝)의 능묘를 건축하려 한다고 발표하면서, ‘분열된 민족의 결집을 위해서’라고 그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중국에서는 전국시대(기원전 475~기원전 251)에 오행사상이 확립되자, 신화적 인물 황제가 중앙의 제왕으로 자리잡는다. 그 후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황제를 모든 왕조와 제후국의 시조로 서술하고, 한(漢)대 이후의 신화에서는 중국문명의 진수를 이루는 수많은 문화적 위업들이 황제에게 귀속된다.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기원의 역사나 신화의 내용들은 후에 민족의식 속에 뿌리박아 한족(漢族) 긍지의 통합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이 되었다. 역사로 덧칠된 황제의 신화는 오래전부터 중국의 통치자들에게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거대한 중국 땅을 한족 중심으로 통합하여 결집시키는 유효한 지렛대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중국 내의 다른 소수민족들에게 2천여 년이 넘도록 그들의 역사와 인권을 박탈하고 왜곡하면서 저항을 잠재웠던 억압적 이데올로기였다. 고고학의 발달과 그 결실 덕분에 우리는 이제 중국의 문명이 여러 지역에서 흥기하여 서로 교류하며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중국 문명은 황하 유역의 중원(中原)에서 싹이 트고 만개했던 한족문명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미개한 종족들을 개화시켜왔다는 중화(中華)주의적 단일문화중심설을 한족 외에도 중국 내 다른 소수민족들조차 사실로 믿고 있었다.

역사로 읽힌 신화는 종종 배타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심에서 타자를 향한 폭력적 광기를 정당화시키는 확고한 신념을 제공한다. 천황 중심의 제국적 질서를 되찾아 21세기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현재 일본 보수극우파들의 파시즘적 행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 다름 아닌 천황가의 왕권신화라는 사실이 또한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제국적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첨병인 후소사(扶桑社)는 그 이름을 중국신화에서 따왔다. 중국신화에 의하면, 해는 아침에 떠오르기 전에 동쪽 계곡에 있는 부상(扶桑)의 나뭇가지에 그 몸을 기대고 있다. 일본 극우파들은 중국의 태양신화는 차용할 줄 알지만, 양처럼 유순하며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소리를 가지고 있으나 호랑이 이빨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포효신화는 읽을 줄 모른다. 그들도 포효처럼 사람의 얼굴을 하고 볼 수 있는 눈도 있으나, 그 눈이 겨드랑이 밑에 붙어 있어 보더라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사람을 잡아먹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면 자신의 몸까지 물어뜯는다는 포효신화의 의미를 읽지 못하는 것일까?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