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대학문화의 자화상 '녹두거리', 이은석(환경대학원ㆍ석사가정)

서울시에서 올해 추진 중인 ‘대학문화거리조성사업’에서 서울대는 빠졌다고 한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서울대는 대학문화를 담고 있는 대학문화공간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그동안 서울대에는 진정 대학문화를 담을 만한 장소가 없었는가?
필자는 학부과정을 연세대학교에서 나왔기 때문에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는 서울대와는 인연이 크게 없었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대만의 대학문화를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 그저 서울대의 대학문화는 ‘대학문화치고는 그저 조용한 문화다’라는 피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만 일년 가까운 서울대 생활 동안 서울대생들이 대학문화에 대해 고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고민들은 필자가 학부시절에 생각하며 고민했던 대학문화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날이 오면’서점. 과거 대학가 모습의 흔적

서울대 문화를 담는 ‘녹두거리’ 고민해야


서울대생들이 고민하는 점 가운데, 서울대학문화의 장(場)이라고 할 수 있는 녹두거리에서 지성의 교류가 사라져가는 것을 걱정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는 신촌권 대학생들이 고민하는 그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 2000년 어느 날, 신촌권 대학생들에게 지성의 원천이자 최후의 보루였던 인문사회과학 서점 ‘오늘의 책’이 높은 임대료 때문에 휴대전화 점포로 바뀌면서 신촌대학권 지성의 터에 마침표를 찍었던 적이 있다. 이날은 신촌의 지성적 대학문화가 명을 달리한 날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교수와 학생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 명맥을 살리려고 애를 썼지만,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이날을 기점으로 신촌권 대학에서는 진정한 대학문화를 찾기 위한 노력이 다각도로 시도됐고, 대학문화의 본질적 의미를 파헤치는 노력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고민들 역시 장소만 달리할 뿐 서울대에도 해당된다는 것을 교내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한편 다행스러운 점은 녹두거리의 인문과학 서점 ‘그날이 오면’이 힘들게나마 명맥을 유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맥을 유지한다는 것이 별일인가 하겠지만, 이는 아직까지 ‘그날이 오면’을 살아 숨쉬게 하는 지성의 혈류가 녹두거리에 흐른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대학 문화공간이 왜 변하고 있을까? 우리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 녹두거리의 모습이 우리 선배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듯, 대학문화를 받아내는 학교 앞 공간은 현재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선배들은 학문과 사상을 논했다. 사회를 향해 저항과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기에 필요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들이 녹두거리에 있었다. 생각을 채울 서점이 필요했고, 그렇기에 녹두거리에 있어왔다. 어느 순간 우리의 모습은 사상과 학문의 깊이를 추구하는 것, 사회를 향해 비판을 외치는 것보다, 취업을 걱정하기 시작했고, 더욱 더 안정된 직장 갖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두껍고 어려운 새로운 사상과 이론이 든 책은 정규 수업에만 보기에도 벅차다. 우리는 그런 어려운 책보다 토익책을 찾았고, 쉽고 빠르게 만족스러운 직업을 갖는 데 혈안이 돼 버렸다. 녹두거리 역시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듯 쉽고 빠른 것을 좋아하는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사상과 학문에 대한 열의를 잃어버린 현재 우리 대학생들의 모습처럼 녹두거리도 깊이와 열의를 잃어가고 있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대학문화거리조성사업에서 녹두거리가 빠진 이유는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서울대 정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서울대 문화보다는 고시 문화가 더 많이 반영되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큰 이유가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정적인 사유를 따지기보다는 우리가 잃어버린 녹두의 대학문화를 되살리기 원한다면, 그리고 우리식으로 문화를 꽃피우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지난날 녹두거리가 지닌 문화가 그러했던 것처럼 진정 우리 서울대 학생들이 원하는 문화적 코드를 녹두거리에 끼워주는 작업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물리적 공간의 형태를 바꾸고자 한다면, 녹두거리에 서울대만이 갖고 있고, 보여주고자 하는 대학문화의 사상들이 충만되었을 때 공간의 구조는 자연스럽게 따라갈 것이다. 공간은 언제나 우리들의 자유의지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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