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화와 대학‘문화’ 사이에서

지금의 대학문화는 대중문화와 다름없다는 말이 많다. 주류문화에 저항하던 대학문화가 사라지고 대학사회는 주류 대중소비문화에 편입돼 기성세대와 구별되는 나름의 대학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학신문 문화부에서는 봄 대동제를 맞이해 학내 문화주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일시 : 5월 11일(수) 오후 2시 반
▲장소 : 대학신문사 주간실
▲사회 : 김필용 문화부장
▲참석자(가나다 순) :
고건혁(인디레이블붕가붕가레코드 대표)
김가람(동아리연합회장)
안종석(총학생회 정책국장)
최윤영(독어독문학과 교수)

정리 : 『대학신문』 문화부
사진 : 신문수 기자

김가람 (독어독문학과ㆍ03) : “향락적소비적인 대중문화와 구별되는 문화 창조를 위한 사상적 기반 있어야”

안종석 (법학부ㆍ01) : “중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참여…정치성과 대중성의 이분법으로 문화를 재단하는 것은 잘못”

최윤영  (독어독문학과 교수) : “1990년대 이후의 대학문화가  모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논의, 성과 있어”

고건혁 (심리학과ㆍ00) :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결이 중요, 비평 등 주체적인 문화향유 고민해야… 정책의 권한 학생에게 위임하면 어떨까”



사회: ‘1990년대 이후 대학문화는 죽었다’, ‘학생들 사이에 공동체 의식이 없어졌다’고들 한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가람(김): 대학의 자치 문화가 지니는 성격과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노래를 한다’ 하면 밴드원들이 만족감을 얻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이더라도 사회 지향적인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의미가 많이 사라져 예전보다 왜소해 보인다. 특히 연극공연에서 그런 것들이 많이 느껴진다. 지금은 남들과 다른 방식을 통해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최윤영(최): 지금 학생들이 1980년대에 비해 역사의식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1990년대 나름의 시대적 배경도 생각해야 한다. 1980년대에는 직접적인 타도의 대상이 있었지만 199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또 1990년대에 동구권이 무너진 것도 큰 영향을 줬다. 그렇기 때문에 1990년대 이후를 1970~80년대의 관점으로만 판단해 부정적이었다고 바라보면 안 된다. 오히려 1980년대 공동체 문화에는 억압적 요소가 있었지만 1990년대에는 소수집단, 여성 등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는 등 현실적 성과도 많았다.

안종석(안): 원론적 이야기지만, 단순히 1990년대 이후 문화를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나름의 스타일과 존재 방식이 있으며 그 속에 지향하는 바가 있었다. 표현방식부터 1970~80년대 방식과 다르다. 1990년대에는 젊은이들의 자유와 패기, 상상력, 다양한 시각 등이 활발히 표출됐다. 문제는 침체된 사회분위기 때문에 진보·보수 모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대학인으로서의 삶을 즐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대학의 역할이 변한 것과도 관계가 있지 않은가.

최: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대학이 지성의 요람으로 기능하면서 현실을 변화시킬 모델을 제시하는 공간으로 인식됐다.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과 얘기해 보면 단지 대학이 사회로 나가는 준비단계로만 비춰지는 것 같다. 대학 시절이 유일하게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인데, 요즘 학생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한 것 같아 안타깝다.

사회: 현재 대학만의 ‘대학문화’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고건혁(고): 대학문화가 하나의 통일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 같은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대학문화에는 최소한 5개 층위가 있다. 대중문화와 가까운, 실제로 대중문화와 별반 차이가 없는 쪽과 전통적인 ‘운동권 문화’를 계승한 쪽, 그리고 이 사이에 존재하는 주목할 만한 층들이 있다. 대중문화에 가깝지만 더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스포츠댄스는 흔히 상업적인 장르로 여겨지지만 학생들이 이윤추구와는 거리를 두고 창조적으로 실천한 스포츠댄스는 대중문화의 대안적 의미로서 대학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운동권문화’에 가까운 쪽에서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수용한 층이 있다. 노래패 ‘메아리’, 마당패 ‘탈’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록 등 대중가요 형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민중가요, ‘개그콘서트’를 도입한 마당극을 통해 대중성을 도모하면서도 저항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문화와 ‘운동권문화’에 모두 거리를 두면서 대중적 기반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홍대, 대학로의 독립문화권이 있다. 다만 문제는 이 문화생산자들을 발굴해 소비자와 연결하거나, 이들의 문화를 문화로 규정짓고 비평하는 그룹이 없다는 것이다.

김: ‘자취방사운드’, ‘뺀드뺀드짠짠’과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문화생산자들이 많이 발굴되고 있긴 하지만 숨겨져 있는 가능성과 참신한 재능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사상적 기반이 마련되고 전수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대가 끊겨 결국 거대한 대중문화의 틀 속으로 흡수되기 쉬운 상황이다. 단순히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대중문화와 변별되는 생동감 넘치는 문화의 창조를 위한 사상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사회: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대학 문화의 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 위기는 위기다. 대안이 손에 꼽을 정도다.

안: 문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중적이어야 한다. 대중적이라고 해서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소비문화를 포착해 새로운 형식을 익힐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소비문화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시도들을 통해 소비문화 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 미디어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소비문화를 재해석하려는 노력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대학생들은 미디어를 쫓아가기만 해서는 안되고 주체적인 문화 생산자가 돼야 한다.

사회: 1980년대 투쟁문화를 통해 쌓아온 학내 참여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과 행사의 축소, 총학투표의 무산 등은 아주 기초적인 학내 참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고: 제일 큰 문제는 대학문화가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학내 미디어도 대학문화의 현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실력있는 사람들이 외부로 나가고 있다. 대학문화는 별볼일 없다는 인식이 더 강해지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떠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 대학문화의 변화가 가능하려면 실제 수업에서 제공하지 못했던 것을 소규모로 공부하는 문화가 더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학생들은 대학문화를 정치와 놀이의 측면에서만 생각하는데, 대학이 공부하는 공간이라는 원칙에 충실해 공부하는 문화를 대학문화로 규정해야 할 것이다.

사회: 대학문화 활력의 척도가 대학 동아리의 활동성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신문』은 지금까지 동아리 활동과 관련해서는 주로 예고기사를 써 왔는데, 이는 특이한 점이나 돋보이는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동아리가 이 점에 대해 별다른 고민이 없는 것 같다.

김: 전반적인 참여 의지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배움에 대한 욕망들은 식지 않았다.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여전히 동아리에 가입한다. 그런데 동아리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고 질적 수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갈수록 동아리 내의 공동체적인 유대 관계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게 도와주는 선배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동아리방에서뿐 아니라 집에서도 연구하고 고민하는 열정을 지닌 사람도 적어지고 있다.

고: 우선 자기 활동에 대한 결과물을 찾지 못해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동아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활동의 결과물을 내실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당장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의 수는 적더라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소통 수단이 있다. 지금까지 3차례 제작된 ‘뺀드뺀드짠짠’의 음반은 서울대뿐 아니라 외부 인디음악 매니아에게까지 호응을 얻었다. 이런 식으로 외부에서도 문화 소비자를 찾을 수 있다. 미대극예술회의 공연 때는 ‘복도까지 찬다’는 전설도 있지 않은가.

사회: 축제를 통해 대학생들의 사상과 문화가 단면적으로 드러나는데,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가고 축제도 볼거리와 술자리 위주로 진행된다는 비판이 있다.

고: 세계 어디를 가도 축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볼거리와 술이다. 그리고 축하사가 만들어져 몇 번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대학문화 중 축제를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앞으로 늘어나면서 계속 재미있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작년 『대학신문』에서 축제 기간에 동아리 릴레이 공연을 할 수 없는가를 다뤘지만, 연습 장소나 공연장도 없는 상황에서 몇몇 뜻있는 사람이 이를 하기란 정말 힘들다.

최: 몇몇 단과대의 소규모 행사는 굉장한 응집력을 보여줬다. 독어독문학과와 노어노문학과 과행사 소개제는 학생들이 주도했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안: 사실 축제는 ‘축하사’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참여다. 법학부 1학년 때 30~40명씩 모여서 대형 고스톱 놀이와 ‘정의의 종을 울려라’ 같은 퀴즈게임을 했다. 별것 아니지만 그 속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총학 사람들이 이전에 과 활동도 했었던 만큼 과 대표를 만나서 토론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의미가 있다.

사회: 대학본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김: 공간 없이 동아리 활동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본부 행정 담당자 중 열의를 가진 분들이 적고, 이런 열의가 상부까지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다.

고: 컨테이너 박스라도 좀 지었으면 좋겠다. 일전에 인문대에 인디레이블을 차리고 싶었는데 공간에 대한 현황파악조차 안 돼 있었다. 대학본부에서 관리가 힘들다면 학생들에게 일정부분 권한을 넘겼으면 좋겠다.

사회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고: 주체적으로 문화를 소비, 향유하는 방식을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규 교육 커리큘럼에 문화 수용방식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그리고 대학본부 문화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와서 찾아가라는 식의 공급위주 정책이다. 수요를 찾아내는 것이 힘들다면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최: 장기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공간인 만큼 ‘21세기에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갗 같은 큰 주제에 대한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이런 것이 대학문화의 큰 주제가 아닐까.

김: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참여욕구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동아리들은 흥망성쇠를 겪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에 대한 욕구와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대학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대학 본부에서 공간을 포함한 물적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안: 정치성과 대중성의 이분법만으로 문화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총학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 2만 학우의 대표체라면 학우들의 욕구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단대 학생회, 과방, 축하사와 이야기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그 속에서 희망을 모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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