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관 (동국대 강사ㆍ철학과)

2002년 8월 인도 중부의 한 시골마을인 빠뜨나 따몰리에서 한 여성이 불 속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이는 정치적인 의사표현도 아니었고 단순한 자살도 아니었다. 당시 그 여자의 나이는 65세. 남편의 죽음을 따라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자식과 주민들은 그녀를 막는 대신, 불에 타는 동안 향과 기름, 공양물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는 거룩한 의례였다.

여인이 남편을 따라 죽는 인도의 고대 풍습을 사띠(Sati)라고 한다. 이 풍습은 현재 불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 잘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잊을만 하면 다시 불 속에 몸을 던져 민중들로부터 사띠 여신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여인들이 등장한다. 설사 경찰이 그 일을 말리더라도, 그 인원이 적을 때는 오히려 주민들로부터 돌세례를 받기도 한다. 왜 성스런 의식을 망치느냐고. 그 일에 관여된 몇몇은 체포되고, 지방신문이나 중앙지에서는 냉정하게 논평을 하지만, 실제로 그 여인은 이내 그 마을의 여신으로 추앙받는다. 몸을 불사른 그 곳은 성지가 되고 그곳을 찾는 순례자도 생겨난다. 이러한 순례자들 덕에 마을 가게들은 매출이 늘어난다.


사띠라는 말 속에는 ‘훌륭한 여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인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화 가운데 이 ‘훌륭한 여성’을 그린 신화도 상당수이다.


대표적으로 사비뜨리 신화가 있다. 사비뜨리 공주는 몰락한 왕가의 자식인 사띠야반과 결혼한다. 혼전에 자신의 남편이 1년 후 죽을 것을 이미 알고도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1년 후 마침내 남편에게 죽음의 신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남편을 버리지 않고 죽음의 신을 따라 저승길을 따라 나선다. 죽음의 신은 사비뜨리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남편의 목숨을 제외한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 사비뜨리는 집요하게 죽음의 신을 쫓아가서 마침내 남편의 왕권뿐 아니라 목숨까지 찾아오게 된다.

남편을 따라, 또는 남편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여인의 모습은, 힌두교 최고의 신인 쉬바신과 그의 부인인 사띠의 결혼생활에서도 잘 나타난다. 쉬바신은 장발과 나체의 모습으로 화장터에서 고행을 일삼는 일탈의 모습을 곧잘 보여준다. 이러한 쉬바신에게 자신의 딸을 빼앗긴 아버지 닥샤는 사위인 쉬바신을 매우 홀대하게 된다. 쉬바신은 반사회적이고 반규범적인 신이었다. 닥샤는 걸핏하면 쉬바신을 욕하는가 하면, 잔치가 있어도 사위인 쉬바신을 초대하는 법이 없었다. 사띠는 자신의 남편이 아버지로부터 홀대받는 것이 서럽고 견딜 수 없어, 마침내 죽음으로 항변한다. 아버지의 잔치날에 사띠는 자결한다.

이러한 ‘사띠’의 모습은 라마의 부인 싯따에게도 나타난다. 온갖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왕자 라마는 랑카 섬의 마왕을 죽이고 그 곳에 유괴됐던 싯따를 구해낸다. 그러나 라마에게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싯따가 오랫동안 마왕과 섬에 머무르면서 정절을 지켰을까 하는 것이었다. 백성들 사이의 소문도 무성해졌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싯따는 결국 라마에 대한 자신의 순결과 의리를 증명하기 위해 불속으로 몸을 날린다.

나는 가끔 사띠와 싯따가 자결할 때 그 여인들의 속내는 과연 어땠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그때마다 뭐라 잘 표현되지 않는 서러움과 비장함이 가슴 속에 칼이 되어 들어오곤 한다. 

이 이야기들은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민중들 속에서 회자됐다. 그들은 끝없이 사비뜨리와 사띠, 싯따를 노래했고, 그때마다 자신들 속에서 그들이 새롭게 등장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신화들은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일에, 또는 미망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 이로 인해 심지어 죽고싶지 않은 여자가 등 떠밀려 불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해서 여신 사띠의 화신이 된다 한들 과연 행복한 삶인가.
신화처럼 사는 것은 반드시 행복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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