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가 불러주는 대로 썼습니다”
“혜경궁 홍씨가 불러주는 대로 썼습니다”
  • 대학신문
  • 승인 2005.05.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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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마가렛 드래블 인터뷰 정리: 김성곤 교수(영어영문학과)

23일(월)부터 일주일간 진행되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대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주최)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 소설가 마가렛 드래블이 한국에 온다. 방한에 앞서 『대학신문』은 마가렛 드래블과 한국현대영미소설학회 회장인 김성곤 교수(영어영문학과)와의 이메일 대담을 마련했다.

 

▲김성곤(김):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소재로 한 소설 『레드 퀸』을 최근 출간하셨고, 문학사상사에서 한글번역본도 나왔는데요. 『레드 퀸』을 쓰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으며, 또 『한중록』의 어떤 점이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까?   

마가렛 드래블(드래블): 『레드 퀸』의 서문에도 밝히고 있듯이, 저는 하보쉬 교수가 번역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읽고 감명을 받아 소설 『레드 퀸』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2000년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서울 국제문학포럼에 참석차 한국에 처음 가서 한국문화를 접하게 됐습니다. 한국문화가 제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차에, 어느날 우연히 『한중록』을 읽게 되었지요. 그 책을 제게 권한 사람은 영국박물관의 동양부서 담당자였습니다.
혜경궁 홍씨의 회고록은 제게 커다란 충격과 깨달음으로 다가왔고, 내 마음은 그녀의 슬픈 이야기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18세기 한국 왕세자비의 비극적 삶이 오늘날 영국 사회 속 여인들의 삶과 긴밀히 연관된다고 느꼈고, 그래서 시공을 초월한 동서양의 만남을 소설로 써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소설을 절반 정도 썼을 때인 2002년, 저는 다시 한국에 와서 여러 궁궐과 박물관, 그리고 정조의 화성행차가 있었던 수원 등지를 돌아다니며 현장 답사를 했습니다. 
나는 혜경궁 홍씨의 독특한 경험과 비극적 삶을 회고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매료됐고, 그녀가 불러주는 대로 소설을 쓴 셈입니다. 『한중록』을 읽으면서 저는 혜경궁 홍씨의 기구한 인생이 제가 탐색해왔고 또 쓰고 싶어했던 현대인의 삶과 긴밀히 연관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 『레드 퀸』은 한국과 영국,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시공을 초월해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래블: 물론 저는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겨우 두 번 가보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제 지식은 피상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에 갔을 때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역사와 모더니티가 혼합되어 있다는 점에 매료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번역으로 읽은 한국소설과 시들도 매력적이었고요. 많은 서구인들은 한국을 전쟁, 디지털 혁명, 또는 전자제품의 나라로만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선입견이 많이 개입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나라를 좋아합니다. 그런 나라에서 발견하는 문화적 차이나 동질성은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나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지요. 우리는 서로의 차이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그러나 무엇이 우리를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요? 모국과 아주 다른 나라를 방문하고, 서로의 문화를 관통하는 교류를 경험하는 것은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레드 퀸』에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등장해 혜경궁 홍씨의 심리와 긴밀히 연결되고 있는데, 『한중록』을 여성을 화자로 한 심리분석적인 텍스트로 보십니까?

드래블: 18세기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주제로 한 『한중록』은 인류문명의 진보와 서구문화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우선 제가 『한중록』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혜경궁 홍씨가 남편인 사도세자의 심리를 놀라울 만큼 생생하고 자세하게, 연민과 이해심으로 기록해나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도세자의 정신상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일종이었을까? 아니면 간혹 궁궐 생활에서 야기된 왕족의 정신적 질병이었을까? 바로 그런 질문들이 저를 매료시켰던 것 같습니다.
사도세자와 동시대인이었던 영국의 조지 3세에게도 광기가 있었고, 다이애나에게는 이상식욕항진증이 있었지요. 

▲김성곤: 『레드 퀸』의 주인공과 혜경궁 홍씨의 유사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독자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는 것처럼 보입니다.
드래블: 『레드 퀸』 제2부의 화자는 의학윤리를 전공하는 바바라 할리웰이라는 여성학자입니다. 그녀의 남편도 사도세자처럼 자살충동을 가지고 있는 정신질환자고, 그녀의 어린아이는 어렸을 때 희귀한 병으로 죽었지요. 저는 혜경궁 홍씨가 당면했던 문제들을 현대 영국여성인 바바라를 통해 재조명하고자 했습니다. 18세기 한국 궁중의 비극이 현대 영국사회의 한 여성의 문제와 병치되면서, 두 여인의 운명은 서로 얽히게 되지요. 사도세자의 끔찍한 죽음을 통해 저는 아직도 크게 진보하지 못하고 있는 서구문명을 비판하려고 했습니다.

▲김성곤: 당신의 작품세계는 현대 영국사회의 문제점을 여성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통해 조명하고 성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드래블: 그렇습니다. 저는 『레드 퀸』에서도 그 점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즉 『한중록』의 화자가 여자라는 점, 그리고 시종일관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에 주목했던 것이지요. 저는 18세기에 벌써 이렇게 지적이고 뜻깊은 여성 회고록이 한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제가 아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그 시기에 그런 높은 수준의 여성 회고록이 나온 적이 없습니다.
저는 최근에 런던에서 소설가 황석영씨를 만나, 『레드 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 그는 제가 혜경궁 홍씨의 심리분석적 기록이 프로이트나 융보다 더 앞섰다고 느끼는 이유를 한국여성의 특수한 상황에서 찾았습니다. 당시 한국의 여성들은 절실한 필요에 의해 그런 글을 썼고, 또 억눌린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나중에 나온 프로이트의 이론을 미리 실천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황석영씨 말로는 조선시대에는 『한중록』 외에도 여성에 관한 또는 여성이 쓴 뛰어난 심리분석적 내러티브가 여럿 있었다면서요.  
▲김성곤: 『레드 퀸』은 제 1부의 화자가 오래전 에 죽은 혜경궁 홍씨의 유령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환상적인 소설인데요.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다소 궤를 달리하는 특이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드래블: 예술작품에서 우리는 연대기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제 작품 세계는 대개 사실주의적이고 때로는 자연주의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레드 퀸』에서는 시간여행을 통해 리얼리티로부터 자유로워진 덕분에 다분히 환상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일상에서 일탈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자유로운 것은 좋은데,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일종의 판타지 역사소설 또는 역사적 판타지 소설을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서구문단에서는 회고와 허구를 혼합하는 소설들이 뜨고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헨리 제임스에 대해 회고와 허구가 혼합된 책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레드 퀸』은 제가 처음으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써 본 소설인데, 낯익은 시공을 떠나 낯선 세계로의 모험과 여행이라는 점에서 어려운 점도 많았습니다.
저는 통상적 의미의 유령을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꿈의 세계가 보여주는 메시지의 존재는 믿습니다. 그런 메시지는 유령처럼 출몰해 우리를 따라다니지요. 제가 처음 『한중록』을 읽었을 때, 저는 그녀가 시공을 초월해 말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녀가 자신이 쓴 글에 얽매여있지 않고 제가 읽는 페이지에 묶여있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김성곤: 영국과 한국의 우정과 교류를 위한 메세지는 무엇입니까?

드래블: 영국과 한국에 대해 제가 보내는 메시지는 군주제는 나라를 위해서도 좋지 않지만 군주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왕세자비를 위해서 좋지 않습니다. 가엾은 찰스 황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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