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관악을 거닐다 보면 졸업생들이 앨범을 촬영하기 위해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띤다. 눈부시게 화창한 가을날, 어색한 정장을 그럴 듯 하게 차려입은 졸업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 곧 4학년이 된다는 사실이 징그럽기도 하고, 그동안 무얼 했나 허망하기도 하고, 잔인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겹쳐온다. 가을을 타는 모양이다 싶어 그냥 한번 웃고, 다시 가던 길로 돌아서지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어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엔 한 선배의 모습이 머릿속에 남았다.


그 선배를 처음 만난 건 3년여 전, '새내기'라는 이름으로 대학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다. 막 대학문턱에 들어선 새내기에게 4학년 선배는 얼마나 대단하게 느껴지는가. 게다가 '단과대 학생회장'이었던 그 선배는 정말 큰 산 같이 다가왔었다.


선배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둥글둥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선배는 하늘을 찌를 듯 근엄하게 서있는 '히말라야'같은 산맥이라기보다 생각날 때 마음 편히 찾아갈 수 있는 마을 뒷동산 같은 사람이었다. 사람과 술을 좋아했던 선배는 녹두거리에서 잔뜩 술을 마시고 객기가 묻어나는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를 때도, 과 행사를 준비할 때도 어김없이 우리와 함께 있었다. 선배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2년 전 여름 어느 날부턴가, 학교 밖에서 선배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선배는 더 이상 학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단과대 학생회장을 맡게 되면, 당연직으로 임명되는 '한총련 대의원'이라는 이유로 수배자가 됐던 것이다. 학생회장 후보로 나섰을 때 선배는 수배자가 된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선배가 수배를 감수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새내기 시절, 그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구속’이 ‘불구속’으로 바뀌었을 뿐
진정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몇 달 전, 정부에서 한총련 수배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총련 수배해제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밝혔고 법무부도 한총련 수배학생이 자수할 경우 불구속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수배해제는 시간문제인 듯했다. 아마 선배의 기대도 작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선배는 떨리는 마음에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운다고 한다. 몇 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려 왔던 일이니 잠을 못 이뤘다는 말도 이해가 간다. 그리고 결국 지난 7월 말에는 152명의 한총련 수배자 가운데 79명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결정했고 다행히 선배도 여기에 포함됐다.


그러나 선배는 여전히 수배자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새내기때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 무엇을 이제 조금은 알 듯 하다. 선배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냉전적 사고를 강요하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것이지, 자신이 구속되느냐 불구속되느냐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자진출두를 하더라도 구속만 되지 않을 뿐, 한총련 탈퇴서를 쓰지 않으면 재판을 거쳐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결국 진정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언젠가 선배가 먼저 졸업하는 1년 후배의 졸업식에 온 일이 있었다. 후배의 학사모를 빌려 써보던 선배의 눈에 서렸던 슬픈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선배는 3년 전 대학에 갓 들어왔던 새내기가 4학년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까지도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양심에 따른 졸업거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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