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일(사회학과 박사과정)

5월 13일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부설 동아시아 센터’ 주체로 「동아시아와 오키나와 문제」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있었다. ‘오키나와’라는 구체적 장소를 통해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지평 내지 문제의식을 점검하는 「동아시아와 오키나와 문제」프로젝트의 중간결산 자리였다. 심포지엄에는 중요한 이론가 한 분이 오셔서 발표를 해주셨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번역된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삼인, 2005)의 저자인 나카노 토시오였다. 그는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총력전체제론자이다.
  일본의 담론적 지형 속에서 총력전체제론은 소위 시민사회파와 맞서고 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마루야마 마사오, 오쓰카 히사오, 우치다 요시히코로 대표되는 시민사회파는 유럽의 근대를 모델로 삼아 전전 일본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전후 일본은 전시체계로부터 벗어나 민주화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총력전체제론자들은 전전과 전후의 연속성을 주장하면서 동원체제로서 국가를 분석하는 것은 1945년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또한 이것은 일본만의 특징이 아니어서 나치즘, 파시즘, 소비에트 체제, 뉴딜체제 등 20세기 국민국가의 공통된 성격으로 파악한다.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발로이다. 시민사회파의 대표적 사상가로 여겨지는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아야 마사오의 텍스트가 전전과 전후, 어떤 컨텍스트와 연동하고 있었는지를 꼼꼼히 따져물어 전전과 전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사상을 관통하고 있는 ‘자유로운 주체’가 지닌 국민동원의 측면을 파헤치고 있다.
  심포지엄은 성황이었다. 4,50명의 청중이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나카노 토시오는 총력전 체제의 문제의식과 자신의 저작을 차근차근 소개해주었다. 국경을 넘어온 발표자를 보면서 잠시 궁금해졌다. 총력전체제파의 리더격인 나카노 토시오는 자신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지금까지 몇 차례나 반복해서 말했을까. 그리고 낯선 청중들 앞에서 또 한 번 되풀이 하는 저 열정은 무엇이고, 그것은 그가 이 자리에서 무엇을 기대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통역을 통해 논의가 전개되는 상황은 아무래도 위태롭게 느껴진다. 자신의 이야기가 통역을 거치면서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을지(물론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의 번역을 맡아주신 정애영님께서 훌륭히 통역해 주셨다), 짧은 시간 동안에 자신의 문제의식을 청중들에게 충분히 전할 수 있을지, 이런 발표자의 입장을 상상하면 무척 긴장된다.
  발표가 끝난 이후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줄곧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있어 세세히 추스르기는 어렵다. 내 고민은 이러한 것이었다. ‘총력전체제론은 일본의 전후를 물을 수는 있겠지만, 과연 일본을 넘어선 아시아를 물을 수 있을까’, 즉 총력전체제론은 아시아라는 지역사적 지평을 담을 수 있는가이다. 뜬금없이 아시아를 묻는 까닭은 전전 일본의 소위 총력전체제 자체가 지금의 일본으로 한정되지 않는 보다 넓은 권역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으며, 내가 발딛고 있는 이 곳도 총력전체제라는 역사적 경험의 자장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의 총력전체제는 일본 본토만이 아니라 동아 혹은 대동아라고 불리는 보다 광범한 지역을 배경으로 출현했던 것이다.
  따라서 전전과 전후의 연속을 가정하는 총력전체제론을 통해 물어지는 전후 일본의 범위와 전전 일본 제국의 범위는 결코 같지 않다. 전후 일본의 총력전체제론을 통해 물을 수 있는 범위에는 전전 일본 제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조선, 대만, 만주 등이 빠져있다. 하지만 일본의 총력전체제를 가능케 했던 것은, 혹은 총력전체제라는 구상이 필요했던 계기는 지금의 일본 본토만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일본 바깥의 영역이다. 확장하는 일본제국은 그 제국적 성질로 인해 자신도 걷잡을 수 없는 외부에 노출되었으며, 그것에 휘말려 들어갔다. 동아, 대동아라는 공간인식과 최종전쟁(‘대동아전쟁’이라고 명명한 태평양전쟁)이라는 시간인식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총력전체제론은 이해할 수 없다. 즉 감당할 수 없는 외부를 내부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총력전체제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교토학파의 총력전 개념에는 단지 전쟁을 위해 자국민을 동원한다는 총동원체제 이상의 것이 담겨있다. 계급투쟁 없는 자본주의, 국가와 국가의 전쟁이 아닌 하나의 질서(근대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다른 질서(동아 신질서) 사이의 전쟁. 이 때 제국이자 동시에 국가는 일체의 차이가 무화되는 혁신의 공간으로 사고되었는데, 이는 당시 제국의 수준에서 발생하는 이질성을 국가라는 동일성으로 회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 제국의 총력전체제에는 외부와의 긴장이 짙게 배어있다.

  하지만 전후 미국의 패권 아래에서 일본은 아시아에 대한 시야를 잃어버렸으며, 아시아에 대한 사상적 긴장력도 잃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동원이라는 측면만을 주목해 전전과 전후의 연속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상이라기보다는 알기 쉬운 국민국가 유형론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총력전체제론은 미국의 민주주의적 뉴딜체제와 소련의 전체주의적 관리체제라는 식의 고정관념에 대해 새롭게 물을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경우 분석의 단위는 국민국가로 한정되어 있어, 국가를 넘어섰던 제국의 경험은 그 사상적 자원으로서의 힘을 잃고 만다. 즉 총력전체제론을 통해서 국민국가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국민국가는 여전히 분석의 단위이기 때문에 그 자체의 실정성이 물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전전에서 전후로’라는 시간적 연속성에 대한 주장은 ‘제국에서 국민국가로’라는 공간적 단절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만약 이렇다면 한국에서 공부하는 내가 총력적체제론을 통해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 운동 등을 분석하면서 총동원체제가 한국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거나, 아니면 식민의 유산을 공유하고 있는 대만 등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유사성을 검증하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국민국가를 단위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는 지역사적 지평은 사라지고 만다. 비교연구를 하는 경우에도 서로의 유사성 내지 차이를 밝히는 방식은 이미 국가 간의 공고한 경계를 전제하고 있다. 제국의 경험을 국민국가 단위로 끊어 알맞게 나누는 것으로는 국민국가 그 자체를 추궁할 수는 없으며, ‘국민사’에 도전할 수도 없다. 단지 서로를 통해 확인되는 방식의 ‘대항-형상화’의 폐쇄적인 반복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게 심포지엄은 하나의 답보다는 오히려 고민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심포지엄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얻게 된 또 하나의 고민이 있다. 지식인간 교류의 문제이다. 나카노 토시오는 국경을 넘어왔다. 하지만 몸이 국경을 넘었다고 감각의 국경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장면은 토론자나 질문자가 마치 자국인을 대하듯, 긴 내용을 끊지 않고 한 덩어리로 늘어놓는 경우였다. 우선 통역자는 무척 난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카노 토시오는 국경을 넘어 왔지만, 한국어 공동체에 참여할 수 없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외국인과 지적인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로 인해 그 공간이 한국의 일상적 공간이 아니게 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배려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국경을 넘어선 대화가 몹시 어렵다는 것, 따라서 좋은 대화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그 외국인에게서 촉발된 중요한 사상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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