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5ㆍ18 광주 답사기

‘영상 사회학’ 수강생들은 5월 17일부터 18일까지 광주민중항쟁 기념행사에 참가했다. 학생들을 인솔해 광주에 다녀온 정근식 교수(사회학과)가  광주 답사기를 기고했다.

한국 현대사 가슴으로 느끼는 공부법 익혀야
너른 안목 키울 수 있는 현장교육 중요해

지난 5월 17일 저녁, 전남도청 앞의 금남로에서 열린 5ㆍ18전야제에서 1980년 5월의 항쟁과정을 짤막하게 재현하는 장면이 있었다. 한 대학생이 버스위에 올라가서 깃발을 휘날리고 있던 장면이었는데, 그가 흔들고 있던 것은 그 때처럼 태극기가 아니라 한반도기였다. 이번 5ㆍ18주간에 광주를 찾은 우리 대학의 학생들은 크게 세 그룹이라고 한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학생들이고, 다른 두 그룹은 ‘반미자주화’를 지향하는 그러나 노선이 약간 다른 학생들이다. 이런 사실은 ‘광주’가 아직도 사회운동의 화두이자 현장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지만, 최근의 움직임을 보면, 너무 쉽게 자신들의 이념을 광주와 연결시킨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나는 현재진행형 학생운동의 화두로서의 ‘광주’가 아니라, ‘광주’를 하나의 텍스트로 보고 이를 해체하여 분석해보기 위하여 30명의 학생들과 함께 광주를 찾았다. 일행 중에는 프랑스나 일본에서 온 학생들도 포함됐다. ‘광주, 다시 읽기’는 지난 20여년간의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어온 에너지 창출의 현장 또는 3차원적 시각자료로서의 각종 기념물과 기념공간을 비판적 독해의 대상으로 삼는 작업이었다. 학생들은 망월동 묘지와 5ㆍ18 국립묘지의 비교분석, 전야제의 구성과 연출에 관한 성찰, 5월노래의 형성과정이나 기념공원의 의미분석 등을 주제로 현지조사작업을 수행했다. 이런 작업 이후에 전남대 및 미국 트리니티대학 학생들과 공동으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 및 기념프로젝트들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다.

학생들간의 세미나에서는 사진으로 보는 부마항쟁, 4ㆍ3기억의 세가지 얼굴, 1987년 광주사진집의 여성주의적 독해, 절대공동체론의 재해석 등이 이루어졌고, 광주의 대학생들은 5ㆍ18이 광주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하여 긍지를 갖지만, 실제로 그 사건의 내용에 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왜 광주에서 제주를 말하는갗라는 질문도 제기되었다. 
  
이런 현지조사수업을 왜 구상했는가. 5ㆍ18은 이를 직접 경험한 세대에게는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 속에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어서 신화나 전설에 가까운 사건이 되었다. 전남대 학생들처럼 우리 서울대 학생들도 사실 5ㆍ18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모범생으로 자라온 학생들에게 한국현대사나 사회적 갈등의 현장을 찾아 무엇이 문제인가를 가르쳐주는 교육은 거의 제공되지 않았다. 어느 만화가가 그렸을 법한 서울대생의 이미지는 여전히 머리가 몸에 비해 크고, 눈이 나빠서 돗수 높은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물론 이런 도식적인 이미지는 현실과 많이 다른 것이지만, 나는 우리 대학의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교육이 너무 강의실에서 책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사회의 구체적인 현실과 상당 정도 괴리되어 있거나 이와는 정반대로 일부 학생들은 너무 우리 사회를 관념적으로 바라보는 폐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대학의 인문사회과학도들은 우리 사회의 역사와 현실을 보다 정확히 인식하기 위하여 머리로만 공부하지 않고 발과 가슴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익혀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나는 우리 학생들이 일상생활의 장인 서울을 곧 한국사회 전체로 인식하는 폐단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 의심해보곤 한다. 실제로 이번 현지조사에 참여한 학생들 중 상당수가 전라도 또는 광주 여행이 처음이라고 말하였다.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 생산지와 소비지의 차이에 관한 민감한 의식 없이 또는 지방을 단지 ‘관광객’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전체를 이끌어갈 인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국제적 안목을 기르기 위한 현장교육과 함께 우리 사회 전체를 균형있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종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 현지답사일정의 마지막은 전남대에서 새로 개관한 5ㆍ18기념관을 둘러보는 일이었다. 거기에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속에서 전남대의 교수와 학생들이 한 역할이 전시되어 있었다. 김남주, 윤상원, 박관현, 박승희로 이어지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요즘의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자신의 대학 구성원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은 어떤가. 단지 한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대학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대학이 어느 대학 못지않게 한국사회의 발전과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면, 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캠퍼스는 시공간을 초월한 텅빈 추상적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가 역사와 사회의 축도이자 지난 수십년간의 한국현대사가 스며있는 학습공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근식 
(사회대 교수ㆍ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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