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신경숙 (소설가)

가끔 사람들은 내게 나무나 새, 꽃 이름을 묻곤 한다. 내가 아는 이름일 때는 나도 신이 나서 가르쳐주지만 대부분 나도 그 이름들을 모른다. 그때면 상대는 “너도 몰라?” 하는 의아한 표정이다. 어느때는 상당히 실망까지 한다.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보니 ‘왜 내가 나무나 새, 꽃 이름들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게 되었다. 내가 시골태생이어서일까? 아니면 내 얼굴에 그런 이름들을 잘 안다고 쓰여 있나? 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자연들의 영향인가?

지난 봄 어느날인가 어렵게 양평에 작업실을 지어서 대부분 남은 시간을 거기서 보내고 계시는 분 댁에 갔다. 그 집은 그야말로 자연친화적으로 지어졌다. 아무 것도 훼손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있다. 담도 없고 마당과 숲의 경계도 없다. 대신 원래 있던 바위들, 이끼들, 나무들, 풀들이 있다. 근교 시장에서 나리, 꽃잔디, 팬지 같은 꽃들을 사다가 바위 밑에 심어놓은 것을 구경하는데 어느 바위 밑에 보라색 풀꽃이 피어 있었다. 그분에게 “이 꽃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었더니 그분이 “제비꽃이잖아, 바이올렛!” 하셨다. 신경숙이 바이올렛을 모르면 그건 말이 안되지, 놀리셨다. ‘이게 제비꽃?’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네 번째 장편소설 제목을 『바이올렛』이라 지었고 내 소설 안에는 바이올렛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꽃말과 생김새 등. 그런데 정작 눈앞에 바이올렛을 두고 그 이름을 물었으니… 얼굴이 확 붉어진건 당연한 일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 제비꽃, 바이올렛을 안다. 어려서부터 봐왔고 내가 좋아하는 꽃이며 『바이올렛』을 쓸 때는 직접 키우기도 했다. 내방에는 바이올렛뿐 아니라 수많은 식물들에 관한 책이 즐비하다. 특히 『바이올렛』을 쓸 때는 수없이 화원과 농장을 들락거렸고 그래도 모르는 것들을 알기 위해 책들을 책상에 수북히 쌓아놓고 읽었다. 그런데 왜 그 바위 밑에 있는 그 꽃이 제비꽃 같지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뭐라 해도 변명일 뿐이다. 내가 제비꽃을 다 몰랐기 때문에 그 꽃이 제비꽃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언젠가 사석에서 노작가 한 분이 작가는 자신이 사용하는 문장에서 이름모를 꽃, 이름모를 새… 이런 말들은 삼가야 한다고 했다. 그 이름을 알아내서 이름을 적어줘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익명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귀히 여기고 이름없이 버려진 것들에게 이름을 줘서 호명해주는 일이 작가의 본분이기도 하다는 말씀을 그리 말했다고 여긴다. 이후 나는 의식적으로 ‘이름모를’ 이란 말은 내가 구사하는 문장에서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내겐 아무리 알아가도 알 수 없는 이름모를 것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게다가 나를 부끄럽게 했던 바위 밑의 제비꽃처럼 어느 때는 너무나 잘 아는 존재도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요즘에 내가 틈틈이 펼쳐보는 책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가지』 이다. 평소에도 내가 귀히 여기는 책 중의 한 권인데 최근에는 아예 책장에서 책상으로 옮겨졌다. 내게 나무 한 그루를 심을만한 장소가 한군데 생긴 탓이다. 그 장소가 생긴 이후로 어딜가나 나무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나무 한그루였으나 그 나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겠거니 생각하니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지 쉽게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나무를 보게 되면 꼭 책을 펼쳐보며 그 나무를 찾아보고 그 나무에 대한 글들을 읽어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이 즐거움을 앞으로도 잃고 싶지 않다. 붉은 동백을 보다 측백을 보다 주목을 보다 대나무와 소나무사이를 오가며 나무들의 태생지, 생김새, 성장과정과 함께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얼굴이 가물가물한 사촌의 이야기를 듣는 듯이 정이 간다. 덕분에 그동안 나에게 많이 봐서 친숙한데도 이름모를 나무였던 나무들의 이름도 많이 알게 되었다. 저자는 광릉 수목원 연구원이기도 한 이유미씨인데 그는 마치 나무의 정령 같다. 담백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 단 몇쪽만 읽어도 그의 나무를 향한 사랑이 전해진다. 그는 어찌 그리 나무에 깊이 빠져 들었을까. 그런 분이 있기에 책 한권으로 백 가지 나무에 대한 숱한 이야기들을 알게 될 뿐 아니라 나무, 꽃, 새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