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창작과 비평 여름호

“이번 학기에 시집을 사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시를 접하신 적이 있습니까?”
‘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회자된 지도 오래됐다. 이제 지금까지의 ‘문학의 위기’ 상황에서도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았던 시 장르에서도 위기의식이 나타나고 있다.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는 시와 시 비평의 현 위치를 점검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기획 「갈림길에 선 한국 시와 시 비평」이 실렸다. 

최근 시, 소통 대신 자기표출 급급 객관적인 평가 없는 비평도 문제



「자력갱생의 시학」에서 최원식 교수(인하대ㆍ동양어문학부)는 “시 독자 격감의 원인을 이미지가 범람하는 문화 탓으로 돌리거나, 문학 일반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시장 요소에 그다지 영향받지 않는 시 장르의 특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독자 수의 감소와 시인 지망자의 과잉은 동전의 양면”이라며 독자와의 소통보다는 자기 표출에 급급한 현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품에 대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 비평에 대해서도 비평이 객관적인 평가 없이 주례사 비평, ‘주문배수(注文拜受)식’ 해설로만 흐른다고 비판했다.

이어진 글들에서는 한국 시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방향 모색이 이뤄졌다. 나희덕 교수(조선대ㆍ문예창작과)는 「기억과 자연, 그 지층 속으로」에서 서정시 속에 드러나는 ‘기억’과 ‘자연’의 범람에 대해 다뤘다. 시의 특성상 기억을 불러내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제대로 된 고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임홍배 교수(독어독문학과)는 「고도자본주의 시대의 사회생태적 상상력」에서 작가 김진경, 하종오, 백무산의 근작시들에 대해 “인간사와 대비되는 자연의 이치를 통해 현실을 되짚어보는 사회생태학적 상상력은 현실을 단순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장욱씨(시인)는 최근 시에 나타난 새로운 표현방식을 소개했다. 예를 들어 글자 크기를 다르게 해서 표현한 함성호의 시 「꽃들은 세상을 버리고」는 대문자만을 읽을 경우 전형적인 서정시지만, 소문자까지 읽으면 서정성의 균열 안에서 다른 종류의 시적 풍요로움을 얻고 있다. 그는 이 외에도 원관념을 말하기 위해 끌어들인 보조관념이 보조적 수단을 뛰어넘어 사실적으로 보존되는 경우 등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시적 표현에서 전형적인 서정성의 원형이나 예외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근원은 없다”고 말했다.


또 유희석씨(문학평론가)는 고은의 시 「만인보」에 대해서 우리말의 맛을 잘 살려냈다고 평가하면서도 시대를 넘어서는 시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창작과 비평』 편집진은 “이번 기획 제목의 ‘갈림길’은 한국의 시 장르가 어려운 기로에 직면해 있음을 나타낸다”고 밝혔다.  

한국 시에 대한 올바른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주제, 표현 방식 등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성과를 맺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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