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온이 시나브로 여름은 가고 가을이 우리 앞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 가을은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했던가. 요사이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하는 것이 사랑이야기인 것 같다. TV고 신문이고 인터넷이고 온통 사랑이야기, 그것도 온갖 종류의 사랑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사랑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모두가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일반사회(요사이 표현으로 사탐) 과목에서 배운 사랑의 종류는 에로스(eros)와 아가페(agape)였다. 이 중에서도 아가페적 사랑이 가장 숭고한 사랑이라고, 그래서 역사적으로 위대한 이들은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이라고 배웠다. 내 자신을 돌이켜보면 살아오면서 아가페보다는 에로스에 더 열중하다보니 남보다는 내 자신이 항상 관심의 중심이 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이가 들며 인생은 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어 사랑을 실천해보려 하였으나 잘 되지 않음을 자각하게 됨에 따라 내 자신은 결코 아가페를 실천할 인물이 못되는 것 같기도 하여 좌절감을 느껴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남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컴패션(compassion)을 가져야 한다는 마더 테레사의 글을 읽으며 아가페 실천을 위한 묘수를 찾았다고 생각하였다. 컴패션이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측은지심이나 연민의 정이 가장 가까운 의미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러 가지 면에서 나보다 나은 사람들에게는 내 자신이 결코 그들을 불쌍히 여겨 사랑을 베풀 수는 없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아가페라는 단어의 어원을 알게 된 것은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 평범한 서양 주부의 글을 통해서 였다. 원래 그리스어에서 아가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감정이 아니고 "남이 잘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agape)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사이 대한민국에서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 것만 챙기기 바쁜 세상이 된 것은 아가페의 의미를 학교시절에서부터 잘못 배워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운 것을 다시 응용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교실에서 배운 것이 무용지물이 되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고려한다면 암기식 교육에서 키워드만을 암기하면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더욱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배가 아픈 것은 참아도 남이 잘되는 것은 못 참는" 한민족의 아들딸들인 그들이 이 땅에서 아가페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계산이 빠르고 손해보지 않고 살아야 잘 산다는 말을 듣는 세태에서 젊은이들이 보고 배울 것이라곤 나만 많이 갖고 나만 잘되려는 마음뿐일 것이다. 요즈음 세상이 각종 시위와 정치혼란으로 시끄러운 것도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남을 밟고 일어서야 했던 기성세대와 그들에게서 한 수 보고 배운 젊은 세대들의 자기만 잘되려는 마음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태풍으로 인해 허탈감으로 변해버린 이 시기에 우리 모두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따뜻한 아가페로 마음만이라도 풍성한 가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이무하
농생대 교수·동물자원과학부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