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2세는 『미국역사의 순환』이란 저서에서 세대의 교체에 따라 일정한 순환주기를 두고 미국정치의 주류가 보수와 진보로 교체된다는 주장을 피력한 바 있다.

이 책이 씌어졌던 1986년 당시에는 보수적인 강령들로 무장한 레이건 정권이 이례적으로 청년층으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을 때였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전쟁에 대한 청년들의 반전운동 등으로 열병을 앓았던 미국에서 레이건같은 보수주의자가 청년층들로부터 지지를 얻는다는 것은 당시의 지식인들이 볼 때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이에 대해 슐레진저2세는 역사학자로서 나름대로의 설명을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청년이라고 해서 반드시 진보적이라는 법도 없고 노년이라고 해서 꼭 보수적이라는 법도 없다. 진보냐 보수냐의 정치적 성향은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의 문제이며, 한 세대의 정치적 성향은 그 세대가 최초로 정치의식에 눈뜰 무렵 어떤 사회적 환경에 놓여 있었는가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공익적 가치'의 추구에 우선순위를 두고 '민주주의의 확장'에 관심을 가진 세대와 개인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세대 사이에 주기적인 순환이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1984년 선거에서는 금주법이 시행되던 1920년대에 정치적 성년이 된 보수적인 세대가, 그들의 손자뻘인 1950년대 후반 이후에 출생한 세대와 함께 레이건에 투표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치의 변동을 세대의 주기적인 교체와 순환으로 설명하려 한 학자들은 슐레진저2세 이외에도 꽤 많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짧게는 12년, 길게는 30년에 이르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들어가면서 순환주기의 길이를 제시하고 있다. 최단의 것과 최장의 것의 중간치를 잡자면 대략 20년 정도가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1981년 10월 서울대학교에서는 학교축제를 '방해'한 65명에 대해 대규모 학사징계가 있었다. 책도 몰래 읽고 세미나를 해도 잡혀가고 토론과 비판에 굶주렸던 시절, 이들은 축제행사의 일환으로 추진된 외부의 '팝그룹' 초빙공연을 시대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 향락적인 축제라고 규정하여 '실력저지'에 나섰던 것이다. 상당수의 재학생들도 이에 호응해 팝그룹의 공연은 무산되고 말았는데, 이는 80년대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일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된다.

그로부터 한 세대 남짓 지난 2003년 10월. 민주화 이후 십수년에 걸쳐 태평양만큼 넓은 비판의 자유와 홍수와도 같은 표현의 자유에 지친 세대는 마침내 방송사의 가요제를 자발적으로 유치하게 되었고, 오히려 본부와 교수님들이 '학생축제의 상업화'에 대한 조심스러운 우려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한국의 대학 사회에 슐레진저2세가 말한 바와 같은 세대교체 주기가 있다면, 그 길이는 대략 22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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