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선(경기대 교수ㆍ한국동양어문학부)

한국인의 기질에 대해서 논하면 복잡한 이야기가 되거나 폄하로 흐르는 경우가 있다.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인의 기질론을 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제주도에 전승되는 본풀이로 당신(堂神)의 내력을 말하는 당신본풀이는 한국인의 기질을 논하는 적절한 사례다. 본풀이는 신화의 우리말로 무속의 제전인 굿에서 구연된다. 무당의 제주도 말인 ‘심방’이 대략 20분 내외로 부르는 것 가운데 ‘궤눼깃당본풀이’가 있다. 이 본풀이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술도, 밥도 잘 먹고 노래도 잘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본풀이의 주인공은 궤눼깃도다. 궤눼깃도는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부모에게 함부로 한 죄로 집에서 쫓겨난다. 무쇠로 만든 상자에 담겨져서 바다에 버려졌다가 동해에 있는 용왕국에 가서 동해용왕의 막내딸과 혼인했다. 혼인날에 밥상을 받고 거들떠도 보지 않아 아버지와 딸이 아주 난처해했다. 사정을 알아보니 ‘자신은 술도 장군, 밥도 장군, 국도 장군, 고기도 장군’으로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양이 작은 밥상을 보고 거들떠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용왕이 ‘사위대접을 못하겠는갗하면서 후하게 대접한 결과 동해용왕국이 휘청거리게 됐다. 용왕은 결국 딸과 사위를 무쇠 상자에 담아서 버렸다. 그렇게 버려진 아이는 강남에 있는 천자국에 가서 괴물을 퇴치하고 제주도 김녕리에 돌아와서 궤눼깃당을 차지하고 마을사람인 단골로부터 돼지고기를 온전하게 받아먹는 본향당신으로 자리잡았다고 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내용이다. 단골과 본향신이 서로 계약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본디 황소 한 마리를 받아먹어야 하나, 돼지고기 온 마리를 바치기로 신과 인간의 계약이 변경되는 일이 벌어졌다.

음식을 많이 먹는 대식성은 신화적 내력이 깊은 것이다. 궤눼깃도에게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는 탐식의 저변은 아버지인 소로소천국에게서부터 비롯된다. 음식을 많이 먹는 전통은 제주도 전역에서 많이 발견되는 전통이다. 제주도의 당신본풀이에서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 현상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된다.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의도적인 결과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음식만 많이 먹지 않고 남의 음식을 탐내서 아버지가 궤눼깃도의 어머니와 갈라서더니, 이제는 아들이 아내의 나라까지도 위태롭게 하는 탐식을 한다. 양껏 많이 먹고 남의 것을 탐내는 신의 속성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은 신명이 과한 사람들이다. 맘껏 술을 먹고 음식도 아끼지 않고 최대한 차려서 대접하고 대접받아야만 음식의 신명도 풀리는 이상한 전통이 있다. 신도 그러니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신과 인간이 말을 통한 계약을 맺어 신의 성찬도 조정한다. 그러니 원칙보다는 인정을 중시하고 정실인사처럼 뒷공론을 많이 하는 좋지 않은 면모도 있다.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힘이 있어서 창조적인 일을 순식간에 하는 좋은 면이 있으나,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뒤도 안돌아 보는 모습이 있어서 아쉽다. 이 본풀이가 불려지는 돗제라는 의례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돼지고기를 나눠 먹는다는 품앗이에 가까운 의례여서 즉흥적인 면이 있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나라굿이 있다. 이는 흔히 ‘국중대회(國中大會)’라고 돼있는데, 이것에 관한 기록 가운데 ‘날을 연이어서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낮밤을 쉬지 않았다(連日飮酒歌舞晝夜不息)’고 했으니 이 전통은 오늘날 제주도의 돗제에서 부르는 ‘궤눼깃도본풀이’에까지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노는 것은 정해진 시간을 두고서 하고 실제로는 열심히 일하고서 나라굿에서 진탕나게 놀았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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