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자존심과 아량을 이어 가는 삶

흔히들 ‘모자를 쓰고 인사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높은 어른을 만났을 때 오히려 갓이 비뚤어지지 않게 단단히 동여매는 것을 도리로 여겼다. 탕건 위에 솟아오른 ‘총모자’가 조선 선비들의 대쪽같은 ‘자존심’이라면, 갓의 둘레인 ‘양태’는 선조들의 드넓은 ‘아량’이었다.

감색 개량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기자를 맞이하는 박창영씨(61)는 4대째 갓 만드는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중요 무형문화재 4호 갓일 입자장’이다. 「스캔들」의 배용준, 「혈의 누」의 차승원이 쓰고 나온 갓들은 모두 박씨의 작품. 30여 년 전, 갓을 찾는 이들이 드물어지자, 시골뜨기 청년이었던 박씨는 무작정 상경해 KBS 국장을 찾아갔다. 사극 드라마에 자신의 갓을 납품하겠다는 것. 그 뒤로 역사드라마, 사극 영화에 등장하는 갓은 모두 박씨의 손을 거치게 됐다.

박씨의 고향 경상북도 예천 청북동 ‘돌태마을’은 예로부터 통영과 함께 갓의 고장으로 손꼽혔다. “당시에는 갓 수요가 굉장했어요. 갓 중의 갓으로 여겨지는 ‘진사립’은 쌀 다섯 가마와 맞먹을 정도로 고가였죠.” 박씨는 아버지의 갓방 심부름을 도맡아 했고, 이것이 박씨와 갓의 질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서너 평 남짓한 박씨의 갓방으로 들어서자, 화로와 인두, 작두, 만들다 만 갓들이 눈에 들어온다. 결결마다 촘촘히 짜인 갓들은 그 크기와 양태 둘레가 다 제각각이다. “갓의 넓이와 재질에 따라 신분의 고하가 드러났죠. 갓이 크고 넓을수록 지위가 높은 양반이었어요.” 임금이나 부모가 상을 당했을 때 쓰는 ‘백립’은 옻칠하지 않고 원재료의 색을 지녀 경건하고 수수한 느낌을 준다. 이조시대에 사대부들이 썼다는 ‘박쥐문양갓’의 양태에는 번영과 행운을 상징하는 박쥐문양이 그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허생전」에서 허생이 전국의 말총을 죄다 사들여 양반들을 쩔쩔매게 했다는 부분을 기억하고 있다면, 갓의 재료가 무엇인지는 짐작이 가능할 터. 총모자 부분은 말총과 쇠꼬리털을 재료로 한단다. 양태는 대나무를 머리카락만큼 얇게 쪼개고 밀어 미세하게 뽑은 ‘죽사’를 돌림줄로 삼아 만들어진다.

“세상에 평생을 바쳐 배우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갓일은 특히 손이 많이 가고 능률이 오르지 않아 평생을 해도 혼자서는 다 못한다고 합디다.” 원래 갓일은 양태 제작, 총모자 공정, 수장일, 양태와 총모자를 이어 붙이는 트집잡기 등 네 분야의 장인들이 분야별로 작업을 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분업하던 네 가지 일을 박씨가 혼자 도맡아 하고 있는 셈이다. 박씨는 한 달이 넘는 인내와 고통을 거쳐 탄생한 갓을 힘들게 본 자식마냥 애지중지한다. “양태, 총모자, 트집잡기가 각각 갓의 ‘진겮콅미’ 역할을 하죠. 이 사이의 균형과 조화로움이 바로 갓일의 매력입니다.”

이렇게 혼신의 힘이 필요한 갓일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이제 박씨의 장남 형박씨(29)가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 홍익대 대학원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는 그는 2001년 문화재청이 지정한 전수장학생이 되었고, 산업 디자인을 하는 둘째아들 형석씨(27)도 틈틈이 갓일을 배워 가고 있다. 그런 아들들이 박씨는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지금은 한낱 골동품이 된 갓 만드는 인생에 시련도 많았지만,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일을 내가 한다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내가 유일하게 갓의 맥을 잇고 있는 거니까요.” 붉은 빛이 감도는 갓인 ‘주립’을 보듬는 그의 눈에는 갓에 대한 40여 년의 애정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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