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칙의 성폭력 개념 재정의 필요… 피해자 지원에 중심 둬야

 

최근 몇 년간 관악에서 반성폭력을 이야기하는 공개적인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동안 학내 반성폭력 운동은 자치규약의 제․개정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관악 학생 사회의 변화로 인하여 활동이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폭력을 자치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자치규약은 자치규약을 만들어 적용할 수 있었던 공동체가 사실상 붕괴돼 가면서 실효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구성원은 매년 변화되므로 성폭력에 대한 인식 수준은 낮아지고 성폭력은 계속, 혹은 보다 빈번히 일어나는 반면, 피해자가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통로는 오히려 제한되었다.

 

자치규약이 거의 유명무실해진 지금 학내에서 ‘서울대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규정은 학생자치단체에서 활동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웠던 자치규약과는 달리 강제력을 지녀 성폭력 사건 처리에 실효성 있는 통로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관악의 상황에서 학칙이 갖는 중요성에 비해 현 학칙은 온전하지 않다. 무엇보다 성폭력을 현행 법체계와 동일하게 남녀차별의 일환으로 정의하면서 실재하는 동성간 성폭력 등 다양한 유형의 성폭력을 포함하지 못하는 것과 문구의 온전함과는 별도로 실제 적용과정에서 사건 처리에 관여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상황을 고려하며 진행될 수 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또 교수가 가해자인 경우 피해자의 상황과 요구보다 교수 사회의 입김이 보다 강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서울대의 성폭력 관련 학칙이 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학칙의 성폭력 개념을 ‘모든 성을 매개로 한 폭력’으로 재정의하는 등 문구를 개정하고, 피해자 지원에 중심을 두고 활동할 수 있도록 성폭력․성희롱 상담소의 전문성을 높이고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학칙을 개정하는 것은 관악에서 다시 반성폭력 운동을 일으키는 과정일 뿐 아니라 현존하는 성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통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정선 관악여모 국사학과․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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