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본격 세계민담전집

▲ © 최정민 기자
세계 각국의 민담을 민족과 문화권에 따라 엮은 ‘세계민담전집’(황금가지)이 출간됐다. 총 30권으로 이뤄진 이 전집중 현재 한국, 터키, 프랑스 등 10개 국가의 민담집이 나왔고 집시, 북미 토착민, 에스키모 등 소수민족의 민담집을 포함한 20권의 책이 곧 나올 예정이다.

 

지금까지 여러 민족의 옛 이야기를 소개한 책은 영어나 일본어판에서 중역하거나 아동용으로 축약․변형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집은 해당 언어와 문화권을 잘 이해하고 있는 각 민족어 전공자가 직접 원문을 번역함으로써, 민담을 원형에 가깝게 소개했고. 현지조사를 통해 민담 속에 담긴 민족의 고유한 문화를 생생하게 드러냈다.

 

민담은 한 민족의 수천 년 삶의 지혜를 담은 이야기로 민족 특유의 인생관, 우주관, 사회 의식이 배어 있다. 종교 개혁 당시 가톨릭을 고수하여 전쟁을 벌인 스페인의 경우, 당시 늘어난 하층민의 빈곤상이 민담에 드러나 있다. ‘곤궁 아주머니의 배나무’라는 이야기에서 ‘배고픔’이라는 아들을 둔 곤궁 아주머니는 하늘의 성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배나무에 올라간 사람은 자신의 허락 없이 내려올 수 없게 만드는 능력을 갖게 된다. 세월이 흘러 저승사자가 찾아오자 아주머니는 그를 배나무 위에 붙잡아 두었다가 다시는 자신과 아들을 찾아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놓아준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세상에는 ‘곤궁’과 ‘배고픔’이 죽지 않고 존재한다고 이 민담은 재치있게 설명을 하고 있다. 또한 태평스럽게 아무 일 하지 않아도 일이 술술 풀리는 ‘돈 후안 치루게테’ 이야기에서는 스페인 사람들의 낙천척인 가치관이 엿보인다.

 

남아프리카의 민담은 줄루족의 민담이 주를 이룬다. 줄루족은 주위의 여러 종족과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는 남아프리카 사회 전체가 공유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줄루 민담은 다른 민족의 문화와 구별되는 몇 가지 특성을 지닌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교감, 교육적 효과를 염두에 둔 윤리적 내용, ‘카니발’이 그것이다. 그 중 ‘카니발’은 미하일 바흐친이 제시한 개념으로 중세 유럽에서 신분 제도에 얽매여 있던 일상적 위계 질서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축제의 마당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산토끼가 사자새끼를 먹는 이야기처럼 약한 동물과 강한 동물 사이의 위치가 역전되거나, 엄격한 가부장적 사회인 줄루 사회에서 위치가 낮은 여자와 어린이들이 영웅으로 등장하는 등의 내용에서 나타난다.

 

한편, 한국편의 저자 신동흔 교수(건국대․국어국문학과)는 새로운 민담 분류법을 세워 민담을 세 범주로 나누었다. 그는 민담은 허구적 상상의 이야기라 가정하고, 그 허구적 상상이 발현되는 방식에 따라 비현실적이면서 신비로운 ‘환상적 민담’, 현실을 우스꽝스럽게 변형하는 ‘희극적 민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사실적 민담’으로 분류했다. 한국편에서는 ‘환상적 민담’의 비중이 비교적 높다. 저자는 ‘환상적 민담’이 불가능한 일을 상상 속에서 실현하려는 민중의 소원을 담은 민담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환상적 민담에 속하는 ‘구복 여행’에서는 ‘민중들의 이야기’라는 민담의 보편성과 ‘한국인의 이야기’라는 특수성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구복 여행’은 가난한 시골 총각이 ‘서천역국에 가면 복을 탈 수 있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서쪽으로 간 이야기이다. 총각은 가는 도중 보물을 얻고 예쁜 여자를 아내로 얻어 행복하게 살게 되는데, 이러한 민담은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는 좋은 배필을 만나 풍족하게 살고자 하는 민중들의 보편적인 꿈을 담은 동시에 행복을 기다리기보다 직접 찾아나선다는 한국 민담의 중요한 특성을 드러낸다.

 

구전되는 민담의 특성상 문헌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현실에서 이번 전집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나라 민담뿐 아니라 세계 여러 소수 민족의 민담까지 모아 엮음으로써 문화를 보는 시각을 넓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