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부성 (수리과학부ㆍ박사졸업)

1996년 3월에 박사 과정을 시작했으니, 장장 9년 반 만에 졸업을 합니다. 살다 보면 되는 일 하나 없이,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하는 때가 있나 봅니다. 그 바람에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나서 병역특례로 5년을 보내야 했고, 뒤늦게 학교로 돌아와서는 잊어버린 내용을 머릿속에 다시 메워 넣느라 고생해야 했습니다.

지난 몇 달간 박사 논문을 준비해 온 과정이 저에게는 마치 가파른 산 하나를 정신 없이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뒤늦게 출발한 처지에, 남들보다 느린 걸음을 벌충하느라 급하게 달려온 길이었습니다. 다른 곳에 한눈 팔 마음의 여유도 없이 허위허위 오르다 보니 이제 막 고갯마루에 올라섰습니다. 그 동안의 과정을 글로 쓴다면, “박사학위 벽취기(霹取記)”라는 제목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수학 문제 푸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은 명확하지 않은 풀이를 향해 때로는 지루한 계산을 반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방향을 잘못 잡아 무수한 계산이 헛수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한발한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이든 그렇지 않든 그 목표에 도달하고 나면, 그 동안 고민했던 자신의 생각들이 참으로 어리석고 한심해 보입니다. 더 쉽고, 더 좋은 방법을 두고, 번거롭고 복잡한 방법을 반복했던 것을 늘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오늘까지의 시간이 저에게는 바로 그 어리석고 한심한 행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고갯마루에 서서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니 가까운 길을 두고 빙빙 둘러오기도 하였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였고, 때로는 멍하니 주저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를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준 여러 선생님들, 선후배들, 친구들, 그리고 언제나 힘이 되어준 가족들에게 무어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앞을 보니 새로운 산이 놓여 있습니다. 그 산을 오르고 나서 뒤돌아볼 때, 아마도 그때까지의 어리석은 행적을 또 다시 자책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입니다. 산을 오르고 지나온 길을 자책하고, 또 산을 오르고 또 자책하고.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앞을 향해 걸어나가겠습니다.

신발끈을 다시 조이며 새로운 산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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