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이야기가 있어 아름다운 그림들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 아름다운 그림들
  • 강나림 기자
  • 승인 2003.07.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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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 모델』, 『팜므 파탈』 - 그림 속 모델을 대하는 서로 다른 시각

라파엘로,「라 포르나리나」: 마르게리타를 모델로 한 그림.
  서양미술은 그림의 소재로 ‘인간‘의 아름다움에 집중했다. 그래서 서양미술 작품에서 인물을 얼마나 아름답게 묘사하느냐 하는 것은 항상 화가와 감상자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림 속 인물들의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것을 넘어서 그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에 주목한 책이 있다. 화가와 작품 속 주인공이 된 인물의 동반자적 관계를 살펴본 『화가와 모델』(이주헌 지음, 예담)과 수백년 동안 작품의 모티프로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은 매혹적이면서도 잔혹한 미인, ‘요부(Femme Fatale)‘의 이미지에 대해 설명한 『팜므 파탈』 (이명옥 지음, 다빈치)이 그것이다.

  『화가와 모델』은 ‘화가의 붓 끝에서 영원을 얻은 모델 이야기‘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가와 작품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 사이의 애정 어린 관계를 소개하고 있다. 친구, 연인, 부부 등의 인간적인 인연으로 엮인 25쌍의 화가와 모델로부터 지금까지 미술의 소품 정도로만 여겨져 왔던 모델이 화가의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는 그의 연인 마르게리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라파엘로는 성모 마리아를 잘 그린 화가로 유명한데, 그가 그린 성모 마리아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사랑하는 연인의 느낌을 동시에 담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는 모델을 향한 시선이 단순히 화가의 것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17세기 유럽 최고의 화가라 불리는 렘브란트 역시 자신의 연인인 헨드리케를 모델로 하여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남편을 배신하고 이스라엘의 다윗 왕과 결혼한 여인 밧세바를 그린 그림에서 렘브란트는 다른 화가들이 그녀를 위대한 왕을 유혹하고 남편을 죽인 요부로 그린 것과 달리 불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정숙한 여인으로 묘사했다. 『화가와 모델』의 저자는 작품의 모델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었기에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부도덕하고 사악하기만 한 여인을 렘브란트가 연민의 감정을 담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팜므 파탈』에서는 밧세바를 위대한 왕을 유혹해 타락시킨 ‘요부‘로 소개한다. 화가들은 부하의 아내를 탐내 충직한 병사를 죽인 다윗왕의 부도덕함은 눈감아주고, 왕을 유혹한 밧세바의 부정한 행실에만 주목했다. 그런 화가들에 의해 밧세바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유혹해 파멸시키는 전형적인 ‘팜므 파탈‘이 되었다.

  적장을 유혹한 뒤 목을 베어버린 구약시대의 유명한 애국 여걸 유디트 또한 아름답지만 잔혹한 ‘팜므 파탈‘이다. 클림트는 전설적인 여성 영웅을 고급 매춘부처럼 묘사했다. 게슴츠레 눈을 감고 입술을 벌려 신음하는 유디트에게서 영웅성은 보이지 않는다. 화가는 칭송받아야 할 영웅에게서 예상 외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켜 그녀를 ‘팜므 파탈‘로 변모시켰다.

  냉혹하고 잔인한 요부로 묘사되는 그림 속의 여자들의 아름다움은 화가의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려진 모델들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화가와 모델간의 따뜻한 관계를 바탕으로 그림 속 인물이 생명력을 띠는 작품과, 그림 속 인물 자체가 강렬한 매력과 함께 사연을 가진 작품 모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는 점에서 역시 아름답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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