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내 작은 진보를 일궈내는 사람들

우리가 살고 있지만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관악구는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과거 ‘서울 최대의 달동네’로 불릴 정도로 어려운 사람이 많았던 관악구에는 이들과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 서울대 학생을 비롯한 많은 활동가들이 찾아왔다.

시대가 바뀌고 관악구의 모습도 많이 변했지만 많은 이들은 여전히 관악구에 남아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학신문』 사회부에서는 관악구에서 작지만 정말 소중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6회에 걸쳐 살펴본다.

[연재순서]

① 관악주민연대
② 꿈꾸는 아이들의 학교
③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주민모임
④ 여명학교
⑤ 관악공동체라디오
⑥ 관악사회복지


더럽고 지저분했던 임대아파트 주변 벽이 사슴과 새가 사는 숲의 한 벽으로 바뀐다. 그 주변에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가던 아이의 웃는 모습이 참 해맑다. 관악주민연대가 벽화사업을 마치고 난 임대아파트의 주변 모습이다.

민간단체인 관악주민연대는 가난한 주민들이 생계활동에 지장을 받지 않고 자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을 목표로 한다. 그에 따라 관악주민연대는 ▲재개발지역 주민지원 ▲실업자 및 실업가정 지원 ▲임대아파트 주거주민 지원 ▲주민청원 및 조례제정 ▲청소년 열린 학교 ▲관악녹색가게 ▲지역문화제 주관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관악주민연대는 1995년에 설립됐지만 그 뿌리는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중반, 도심의 불량주택 철거방침에 따라 살던 곳에서 쫓겨난 이들은 관악구 산비탈로 옮겨와 5평~10평 남짓한 집에서 더덕더덕 붙어 살게 됐고, 그래서 한때 관악구는 ‘서울 최대의 달동네’로 불리게 됐다. 이런 관악구에 많은 활동가들이 들어와 빈민지원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탁아소, 공부방, 야학 등을 중심으로 활동해 오다가 좀 더 조직적인 단체의 필요성을 인식했고, 1995년 지방선거로 인해 주민자치 요구가 활발해지자 1995년 3월 관악주민연대를 결성했다.

관악주민연대는 시기에 따라 가장 크게 불거지는 관악구의 주요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1998년까지 관악주민연대는 관악구 낙후지역 활성화를 명목으로 1993년부터 시행된 관악구 재개발에 맞서 철거주민의 인권과 생활권보호에 중점을 뒀고, 1999년부터 2001년까지 IMF에 따른 경제 한파로 인해 발생한 실업자 지원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다.

2001년부터는 임대아파트 주거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임대아파트 관리규약 개정, 조례 제ㆍ개정 운동 등 임대아파트 거주 주민 지원 사업에 중점을 두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활동은 서울대 학생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설립 초인 1995년부터 관악주민연대는 서울대 자치연대(95년 총학생회)와 지역연대를 결성해 활동했다. 관악주민연대 분과위원회에 직접 참여한 자치연대는 ▲부패방지법제정운동 및 관악구 후보자 간담회 진행 ▲빈민학생연대 ▲녹두문화제 ▲다솜공부방 ▲도림천 살리기 활동 등을 벌였다.

빈민학생연대활동을 통해 자치연대는 철거민이 된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가수용 단지, 임대주택 등의 주거대책 마련 및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또 공부방 등의 형태를 통해 주민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로써 이들은 활동과정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활동공간을 확장하려고 했다.

 그러나 관악주민연대와 자치연대와의 연대는 1999년 무렵 약화되기 시작했다. 관악주민연대 이명애 사무국장은 “1998년에 관악주민연대의 조직구조 개편에서 자치연대가 참여했던 주요 분과가 없어졌고, 자치연대에서도 후배들의 맥이 이어지지 못해 연대가 끊겼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대 학생들의 참여는 사범대 학생회 등 단과대 학생회와 동아리 등이 공부방을 운영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관악주민연대의 발전방향에 대해 이명애 사무국장은 “우선은 임대아파트 관리 규약 재정 등 임대아파트 지원 활동에 역점을 둘 생각이다”며 “관악주민연대가 관악의 주민들이 생활의 주체, 풀뿌리 주민자치 공동체의 주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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