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 책과 함께 시작하는 건 어때요?

본성과 양육
(Nature via Nurture)

매트 리들리 지음,
김한영 옮김, 김영사

2004년, 사람의 유전자 수가 2만여개에 불과해 초파리나 예쁜꼬마선충 따위의 벌레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전자 수로 사람과 하등동물을 구분할 수 없게 됨에 따라 해묵은 ‘본성 대 양육’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인간의 행동이 유전자(본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선천론자와 그 반대로 환경(양육)과 관계가 깊다고 주장하는 경험론자 사이에 치열하게 전개되는 본성-양육 논쟁만큼 흥미로운 머리 싸움도 드물 것이다.

영국의 과학저술가인 매트 리들리는 지난 100년간 이 논쟁을 이끌어 온 ‘12명의 털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청문회를 연다. 찰스 다윈, 윌리엄 제임스, 장 피아제, 이반 파블로프, 프란츠 보아스, 에밀 뒤르켐 등 생물학ㆍ심리학ㆍ생리학ㆍ정신의학ㆍ인류학ㆍ사회학의 쟁쟁한 이론가들이 인간 행동의 열쇠를 놓고 다투는 모습이 중계된다.

리들리는 본성-양육 논쟁의 역사를 반추한 뒤 1980년대 이후 유전자에 대해 발견된 새로운 사실들을 통해 “유전자는 자궁 속에서 신체와 뇌의 구조를 지시하지만, 환경과 반응하면서 자신이 만든 것을 거의 동시에 해체하거나 재구성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본성-양육 논쟁의 이분법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리들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 같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음, 돌배게

내가 학부 3학년이었던 90년대 초반, 짝사랑의 참담한 패배(?)를 맛보고 두문불출하던 내게 유일한 위안거리는 책이었다. 백여권의 책 목록을 적어 놓은 종이를 책상 한쪽에 놓아두고 겨울방학 내내 방 안에서 책만 읽었었다. 그때 읽었던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이 책은 통혁당 사건 무기수였던 신영복 선생이 20년 동안 징역살이를 하며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놓은 책이다.

그러나 단순한 안부 편지를 넘어서서 내면의 사색에서 비롯한 깊은 통찰과 직관들을 시적인 언어로 풀어놓은 문학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감옥이라는 닫힌 공간 속에서도 인간의 사고가 얼마나 무한히 자유롭게 열릴 수 있는 지를 깨닫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특히 그가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관계 맺기’의 중요성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또한 그가 ‘발전이란 실천과 인식의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하여 인식과 더불어 실천을 강조한 것은 그의 사상이 단지 이상과 관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기도 한다.

가을이다. 가을은 독서하고, 사색하기에 좋은 계절이며, 그리하여 자라기에 좋은 계절이다. 자란다는 것은 독서와 사색과 실천의 총합에 의해서 온전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자라는 데 있어서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장유정(대학국어 강사)

 
21세기 통일한국을 향한 모색
임현진ㆍ정영철 지음.
서울대학교 출판부

한때는 통일이 민족의 지상과제였다. 통일을 위해 전쟁도 불사했다. 통일을 위해 인권도 무시했다. 정치적 자유도 유보했고, 경제적 빈곤도 감수했다. 그러다가 “선건설 후통일”을 주장하는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그후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통일논의는 봉쇄됐고, 그것을 국가가 독점했다. 통일을 이야기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고,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세월이 흘렀다. 경제는 풍요해졌고, 정치는 민주화됐다. 그런데 이제 통일은 ‘남의 일’이 되었다. “통일은 꼭 해야 하나?” “통일비용이 만만치 않다던데?” 그동안 통일은 ‘높은 양반들’이 주고받는 ‘큰 이야기’였다. 군사, 정치, 경제 등 남북한 체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이 책은 제도의 통일을 넘어서 사회문화적 통일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통일논의를 일상생활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통일은 무엇인가?” 묻고, 통일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어떤’ 통일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모색하고 있다. 분단 이후 남북간의 이질화와 통일문제를 둘러싼 남한내부의 ‘남남갈등’을 고려할 때, 통일에 대한 사회문화적 접근이 갖는 의의는 매우 크다. ‘준비된 통일’을 맞이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계급ㆍ계층간, 세대간, 집단간, 개인간 통일의식을 수렴하고 고양하는 중요한 매개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ㆍ비교사회적 경험과 ‘발본적 상상’에 근거한 이 책은 통일의 장정이 시민 개개인의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정일준 교수(아주대ㆍ국제학부)


말하기의 다른 방법
존 버거,장 모르 지음,
이희재 옮김, 눈빛출판사

사진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 질문의 답변을 위해 영국의 미술평론가이며 소설가인 존 버거와 사진작가 장 모르가 7년 동안 산악지방 농부들의 생활을 공동작업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1982년 사진집 겸 에세이집인 이 책을 출간하였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려는 이들의 노력은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으로 이어진다. 1839년 발명된 카메라는 당시 실증주의와 사회학 등 인문학과 과학기술에 힘입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 결과 사람들은 사진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사진은 진실도 거짓말도 말하지 못한다. 설사 진실을 말한다 하더라도 그 범위는 지극히 제한될 뿐이다. 그 이유는 사진을 찍는 사람, 찍히는 사람, 보는 사람, 이용하는 사람의 기억과 관심이 제각각 다르게 어우러져 사진의 모호성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한 장의 사진은 시간의 한 단면만을 싹둑 잘라서 ‘순간’으로 고정시킨다. 그러나 뛰어난 사진은 순간을 ‘영원’으로 확장시킨다. 이는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고 개인의 기억을 고착시키려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에 다름 아니다. 필자들은 잊지 않고 있다, 카메라는 우리가 살아 숨쉬는 여기, 이곳의 어쩌면 가혹할 수도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음을 말이다.

-방명주(사진작가, WWW.FOASIS.COM)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