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소설가 정이현씨

사랑이란 무엇일까. 조금은 유치한 이 질문에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이 고민해 왔다. 여기, 사랑은 ‘사회가 만들어낸 정치적 산물’이라고 말하는 한 작가가 있다. 2002년 제1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2004년에는 제6회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하며 놀라운 속도로 주목받고 있는 정이현이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이 책을 두고 ‘이제 정말 2000년대적인 문학이 시작된 것일까?’라며 들뜬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스토리이지만, 어쩌면 너무나도 ‘현대의 일상’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리라. 버스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여대생들의 조잘거림에서, 친구가 밤늦게 울면서 건 전화 한 통에서, 서랍 속에 처박힌 내 일기장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들. 현실과 너무 닮아 있는 것은 때로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눈앞에 나타난 정씨는 책 표지의 사진보다 훨씬 앳돼 보였다. 얼음이 가득 담긴 까페모카를 앞에 두고 그녀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녀는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91학번으로, 또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00학번으로 두 번의 대학생활을 경험했다.

무엇이 그녀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을까? “전공 협동과정으로 ‘여성학’을 배웠어요. ‘잡지 수용자 태도 연구’, ‘20대 초반 여성의 성 경험’ 등을 주제로 논문을 쓰기 위해 많은 십대 소녀들과 여대생들을 취재했죠. 그런데 그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정말 솔직하고 생생해서, 이를 ‘논문보다는 소설로 표현해야 제대로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나쁜 여자들’이라는 평을 받는다. ‘순결’을 미끼로 남자친구를 기만하는 여대생, 남편과 정부를 죽게 하는 유부녀, 부모를 상대로 납치극을 벌여 돈을 타내는 여중생. 그러나 정작 그녀는 그러한 평가에 회의적이다. “누가 그들을 ‘나쁘다’고 규정지을 수 있을까요? 단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욕망을 향해 더 달려가는 것뿐이잖아요. 그녀들이 좀 더 현실적이고, 당돌하다고 해서 악하다고 할 수 있나요?”
그녀는 ‘사랑’ 역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감정이라고 본다.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사람들은 외로워지고, 기댈 곳을 찾게 된다. 그러면서 ‘친밀함’의 범주가 확장되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차이와 맞물려 사랑이라는 감정이 형성됐다는 소리다. “어쩌면 이 사회는 ‘사랑을 권하는 사회’가 아닐까요? 온전한 사랑의 감정이 과연 존재할지…” 소설 속 주인공들도 형성된 사랑 안에서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꿈꾸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가 생각하는 ‘문학’은 무엇일까. 그녀는 ‘낯선 충격’을 문학의 가치로 꼽는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머리부터 가슴까지 찌르르하게 와 닿는 느낌.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거나, 또는 익숙했던 일상의 이면에서 ‘낯 섦’을 느끼는 거죠.” ‘소설은 엉덩이 힘으로 쓰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낯선 충격’은 작가의 오랜 기다림과 진득한 인내를 수반한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이후, 문예지에 게재했던 그녀의 소설 열 작품이 묶인 두 번째 소설집 「삼풍백화점(가제)」이 10월 중 나올 예정이다. 「삼풍백화졸은 문학동네 여름호(43호)에 실린 그녀의 자전소설이다. “원래 자전소설 쓰는 것을 이해 못 했어요. 소설은 ‘허구’지, 왜 자기 얘기까지 구구절절 쓰나 싶었죠. 이번에 요청을 받아 써 봤는데, 정말 아팠고, 많이 울었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됐죠.”

그녀와의 인터뷰는 인생 선배와의 허물없는 수다에 가까웠다. 그녀는 기자에게 ‘겁없이 살라’고 한다. “요즘 대학생들은현실에 저당잡혀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먼저 부딪치는 게 20대의 특권인걸요. 아, 그리고 마음껏 연애하는 것도 중요해요.” 뜻밖에도 그녀는 연애 예찬론자였다. “저는 대학생활 내내 연애만 했어요.(웃음) 누군가를 깊이 알아가면서 배우는 게 정말 많잖아요. 자신만큼 타인을 사랑해 본 적 없는 사람이 과연 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등단할 때는, 비장하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수상 소감을 쓸 정도로 일상 배후의 무엇을 밝혀내고자 했다”는 그녀. 이제는 스스로 감동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목표라고 한다. “신파처럼 눈물 짜내는 것 외에 현실에 도사리고 있는 차가운 진정성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말 속에서,‘내추럴 본 쿨 걸’의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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