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의 뉴올리언즈를 강타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큰 도시가 삽시간에 바람에 휩쓸리고 물에 잠겨버렸다. 인명피해가 엄청나고 살아남은 수십만명의 이재민도 식량과 식수 부족, 전염병 창궐 가능성, 치안부재 등 지옥과 같은 참상을 겪고 있다. 인간은 자연을 착취하고 때론 거스르면서 자신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솜씨와 힘을 자랑하지만, 그것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마침 그 직후에 우리나라에도 태풍 ‘나비’가 다가와 온 국민이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도 태풍이 비켜가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울릉도를 비롯한 동해안 지역에서는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있었다.

자연을 다루는 인간의 솜씨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지진이나 태풍 등 거대한 자연재해를 아예 봉쇄할 길은 없을 것이다. 그저 예측과 대비와 사후수습에 최선을 다하는 슬기와 노력을 발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언제라도 재해를 당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실제로 당하는 경험을 무수히 하면서도 금방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반복하고 있다. 예측이 어렵다고 해서 그저 우연이라 치부하고 운수 탓이나 하면서 대비책 마련에 필요한 경비를 아까워하는 것이다.

뉴올리언즈의 참상은 초강대국 미국으로서도 어쩔 수 없을 만큼 운이 나빴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들려오는 이야기는 운이 나빴다고만 볼 수는 없는 사연을 전해준다. 우선, 수면보다 낮은 뉴올리언즈의 둑을 보강하기 위한 예산 청구를 기각했다고 한다. 우주탐사나 전쟁수행 비용에 비하면 보잘것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 1억 달러의 비용을 아끼려다가 그런 참상을 당했다는 것이다. 정부 살림살이의 자원은 어차피 한정되어 있고 우선순위에 따라 투입될 수밖에 없다. 그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는지가 정치의 핵심일 터이다. 뉴올리언즈에서도 가장 참혹한 피해를 당한 지역은 많은 주민이 자동차가 없어 대피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빈민가라고 하는데, 이것은 저소득 계층을 위한 재해 대비책이 미비했음을 웅변해 주고 있다. 사후수습에 대해서도 9.11 테러 당시와 비교해 신속하고 조직적인 대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자연재해가 날 때마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계층은 언제나 저소득층이었다. 가까운 예로는 2001년 7월에 수도권의 폭우로 신림동 일대가 홍수를 겪어 많은 저소득층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은 사례를 들 수 있다. 삼성산에 건립된 아파트단지는 무사했지만, 그 개발사업으로 인하여 왜곡된 물길이 큰 피해를 입혔고 반지하에 사는 저소득층은 모든 것을 잃었던 것이다. 가난으로 버젓한 곳에 거주하지 못하는 것만 해도 안타까운 일인데 정부의 관심부족과 대책 미비로 겪지 않아도 될 자연재해까지 겪는다면 이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번 뉴올리언즈의 비극은 우리의 재해대책이 누구의 처지에 초점을 두고 마련되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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