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안 논의 과정

외환위기 직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는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채택했다. 이후 통계청의 경제활동 인구 조사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비정규직 비중이 45.2%에서 53%로 약 8% 증가했다. 정규직과 같은 종류의 일을 하면서도 임금, 보험 등 근로조건에서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 2001년 비정규직법안 논의 시작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보장 요구가 확대됨에 따라 2000년 7월부터 3개월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비정규직노동자기본권보장과차별철폐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비정규공대위), 여성단체연합은 각각 국회에 비정규직 균등대우 조항 신설, 기간제 사용 제한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 제정과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조항의 개정을 청원했다. 이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비정규직법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이듬해인 2001년 7월 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는 ‘비정규직근로자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년간 논의를 거듭했으나 결론을 짓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초, 노동부는 노사정위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 관계부처와 협의해 비정규직법 초안을 작성했다.

◆ 2004년 정부 비정규직법안 공개, 노사 간 본격적인 갈등 시작

그러나 지난해 9월 9일 노동부에서 작성한 법안이 공개되자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됐다. 노동계는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기간제 사용사유에 규제가 없는 점 등의 이유로 정부법안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당초 10일로 예정됐던 당정협의 일정을 연기시켰다. 또 비정규노동조합 대표자들로 구성된 비정규연대회의는 열린우리당 당의장실을 점거하고, 법안철회를 요구하며 일주일 동안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노동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여당은 정부법안 파견업종의 ‘네거티브제’를 ‘포지티브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네거티브제’는 파견 불가하는 업종을, ‘포지티브제’는 파견 허용하는 업종을 법률로 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정기국회에서 비정규직법에 대한 심의가 계속됐으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비정규직법 심의가 올해 임시국회로 넘어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과 노동계가 노사정 사이에 논의할 시간을 달라며 법안심의에 반대했다. 또 민주노동당은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법안심의가 예정된 당일 소회의실을 점거하고 심의를 원천봉쇄해 논의는 4월로 넘어간다.

◆ 2005년 ‘노사정-국회 환노위’ 협상 시작

그동안 민주노총은 ‘사회적 교섭 방침’을 둘러싸고 대의원대회가 두 차례 무산되는 등 진통을 겪었지만 3월 18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직권을 발휘해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고, 노사정 대표자들이 지난 4월 8일부터 ‘노사정-국회 환노위’ 협상을 시작했다.

◆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권고안 제시

이때까지만 해도 노동계는 기존의 정부법안에서 ‘파견업종을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변경된’ 수준의 수정안을 정부여당으로부터 강요받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4월 14일 인권위가 비정규 관련 정부법안에 대해 기간제법에 사유제한을 도입하고, 파견제 업종을 현행 유지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견을 표명하면서 노동계에 힘이 실리는 듯 했다. 그러나 ‘노사정-국회 환노위’는 서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비정규직법안은 또 다시 6월 임시국회로 넘어갔다.

◆ 9월 정기국회에서 재논의

‘노사정-국회 환노위’는 6월 19일까지  세 차례에 거쳐  6월 비공개 협상을 했지만 여전히 의견 합의에 실패했다. 이목희 국회 법안심사소위원장은 “협상에서 합의된 부분은 합의된 대로, 합의되지 않은 부분은 국회 논의를 거쳐 6월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겠다”며 법안 심의를 재촉했다. 이에 민주노동당은 환노위 소회의실을 점거하고 일주일 동안 법안심의를 봉쇄해 결국 법안 처리는 무산됐고, 이로써 비정규법 심의는 9월 정기국회로 다시 미뤄졌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권순식 연구위원은 “정부법안에 대한 노동계의 반대가 극심해 법안 수정이 있지 않는 한 9월 임시국회에서도 법안 통과가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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