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비정규직 ‘보호’할 수 있을까

지난 4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류기혁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차별시정은커녕 오히려 비정규직 노조를 억압해온 사측과 이를 방기한 노동부가 원인을 제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비정규직 남용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지난해 만들어졌던 비정규직보호법안이 이번달 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대학신문』에서는 비정규직보호법안에서 쟁점이 됐던 사안과 정책 추진 경과를 검토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지난해 9월 입법예고된 이후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비정규직법안(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안과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중개정법률안). 노동계와 재계, 정부 모두 각자의 입장을 견고하게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합의점은 도출되지 않고 있다. 법안의 주요 조항을 중심으로 논란 사항들을 검토해본다.


<차별금지>

·비정규직에 대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처우금지 명문화
·노동위원회를 통한 차별시정절차 마련
·확정된 시정명령을 사용자가 이행하지 않을 경우 1억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포기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노동계는 정규직이냐 아니냐에 따라 행해지는 차별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질적ㆍ양적으로 같은 가치의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같은 임금이 지급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독일이나 영국 등 대부분의 EU 국가들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도입하지 않았으며, 동일가치노동을 규정할 객관적 기준이 없으므로 노동계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이미 우리나라 남녀고용평등법에 명시돼 있으며 이를 적용한 대법원의 판례들도 있는데 객관적 기준을 문제삼을 수 있는가"라고 반박한다.

한편,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정부의 차별처우금지 명문화가 차별시정책으로는 미흡하다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을 명문화해 적어도 임금만큼은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차별시정, 실효성은?
정부안에 의하면 확정된 시정명령 불이행에 대해서만 과태료가 부과된다. 따라서 사용자가 노동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하고 법원에 제소해 2~3년이 넘도록 차별을 시정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어도 차별시정이 확정된 후 시정명령만 이행하면 상관없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차별 그 자체에 대한 처벌규정을 근로기준법상에 마련해 차별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도 대부분의 사건이 노동위원회에서 확정되고 있고, 명백한 차별행위가 일어난 경우 기업 이미지 훼손, 추가적 소송 비용 발생 등을 감안할 때 사측이 무작정 대법원까지 갈 수는 없으므로 정부안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내놓은 차별시정방안의 실효성에 대해서 많은 법학자들은 회의적이다. 지난해 10월 민주노동당이 한국노동법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법대 교수 24명을 대상으로 차별시정조치의 효력 발휘 여부를 물었던 설문조사에서는 14명의 응답자(57%)가 ‘차별시정조치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러한 전망의 핵심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손해를 무릅쓰고 차별시정 신청을 하기 힘들다는 현실이 있다. 고용 여부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맡겨져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별시정 신청을 했다는 이유로 재계약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우려가 있다. 또 정부는 노동조합과 같은 단체가 아닌 당사자인 개별 노동자만 차별시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개별 노동자들의 부담이 크다. 권두섭 변호사는 “법적으로 차별시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차별입증’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필요한 비용은 개별 노동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뿐더러 입증에 필요한 자료 또한 대개 사용자 측이 소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이어 “노동자들이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기 위해 나를 찾아올 경우 웬만하면 소송을 포기하라고 설득한다. 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비용 소모와 위험 부담만 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기간제 노동>

현행법상 기간제 근로계약기간은 1년 이내로 제한되며, 1년을 초과해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할 경우 함부로 해고할 수 없다. 하지만 반복갱신에 대해서는 제한이 없어 사용자 측은 1년 주기의 반복갱신을 통해 기간제 근로자를 지속적으로 사용해  해고제한을 회피하고 있다. 반면 기간제 근로자들은 1년 주기의 재계약에 따른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에 정부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어 기간제 확산을 막겠다고 밝혔다.

·최대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간제 노동자 사용 가능(반복갱신의 경우에도 총 기간이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용 가능)
·3년을 초과해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계약기간의 만료만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음        

◆사용사유는 제한하지 않아


노동계와 인권위는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시적으로 노동자가 필요한 업무에서도 기업들이 정규직 대신 인건비가 낮고 해고가 쉬운 기간제 노동자를 고용하는 행태를 규제하기 위해 사유제한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사유제한이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그것이 현실화될 경우 노동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에 도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비정규직대책과 관계자는 “기간제 사용사유를 제한할 경우 기업들은 파견, 도급 등 노동자 처우에 있어 책임이 약한 간접고용방식을 택할 것이므로 오히려 고용불안요인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측 강문대 보좌관은 “고용불안요인을 커지게 하는 파견과 도급은 당연히 정부가 엄격한 기준으로 제한하기로 돼있는데도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유제한이 없는 정부안은 종래 노동시장에서 나타났던 기간제 남용으로 인한 고용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강성태 교수(한양대ㆍ법학과)는 “기간제 고용에 아무 제한이 없으므로 기업들은 3년이 되기 전에 노동자를 해고하고 다른 사람을 다시 기간제로 고용하는 방식으로 정규직 대신 기간제 근로자를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간제 확산은 전혀 막지 못하고 기간제 노동자의 교체주기만 1년에서 3년으로 늘릴 뿐이라는 것이다.

◆3년이 지난 기간제 노동자의 지위는?

정부는 지난해 입법안의 취지를 설명하며 “기간제 노동자가 3년이 지나면 정규직과 다를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실제로 정부안에는 ‘3년을 넘긴 기간제 노동자는 함부로 해고될 수 없다’는 내용만 있어 해석 논란을 일으켰다.

이 논란은 작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비정규직법안 공청회에서 정리됐다. 공청회에 참석했던 정병석 노동부 차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3년이 지난 기간제 노동자는 ‘기간제 근로계약은 유지되면서 해고로부터는 보호되는 근로자’이다. 즉, 3년이 지난 기간제 노동자는 정규직에 비해 차별적인 대우를 받으며 해고로부터만 일정부분 보호되는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인 셈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가 크게 반발하는 가운데 인권위는 지난 4월 이 규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3년의 기간제 제한을 위반하면 정규직으로 간주해 보호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파견노동>

정부는 불법파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파견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파견근로자보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기간제 사용기간에 맞춰 파견기간도 현행 2년 이내에서 3년 이내로 연장
·동일한 파견노동자를 3년 넘게 사용할 경우 사용사업주에게 직접 고용의무 부과(위반시 과태료)
·파견기간 3년 종료 후 그 업무에 3개월간 파견노동자 사용금지(휴지기간 신설)

◆고용의제에서 고용의무로

현행법상 파견기간을 초과해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경우, 고용계약이 체결되지 않더라도 그 파견노동자는 법적으로 파견업체 측이 아닌 사용자측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간주된다(고용의제). 따라서 파견기간을 초과하기 시작한 날부터 파견노동자에 대한 부당해고 등 각종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책임을 사용자 측이 지게 된다. 이에 반해 정부안에 명시된 ‘고용의무’는 직접 고용을 강제하는 사법적 효력이 없다.  조경배 교수(순천향대ㆍ법학부)는 “고용의무의 경우 사용자는 과태료만 내면 기간을 초과한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그대로 비정규직으로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지적하며 “노동부가 과연 파견노동자에 대한 보호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휴지기, 비정규직 줄일 수 있나?

정부는 3개월간의 휴지기간으로 인해 한 업무에 파견노동자를 지속적으로 투입하지 못하게 되므로 정규직 고용 유인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휴지기간에 다른 형태의 간접고용 인력 사용을 규제하는 규정이 없어 저렴한 인건비를 선호하는 기업들은 이 기간 동안  기간제 등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용어설명]
▲ 기간제 노동자: 흔히 일용직, 임시직, 계약직 등의 이름으로 불리운다. 정해진 계약기간 동안은 고용을 보장받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재계약되지 않는 이상 자동적으로 직장을 떠나야 한다.

▲ 파견 노동자: 임금을 주는 고용주와 업무 지시를 하는 사용자가 일치하지 않는다. 파견사업주와 고용관계를 유지하지만 사용사업주의 사업장에서 근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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