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희
보건대학원교수ㆍ보건사회학

지난 7월에 일본 고베시에서는 국제에이즈컨퍼런스가 열렸다. 여기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노동자들(commercial sex worker)이 특유의 옷차림을 한 채 회의가 열린 호텔의 로비를 배회하고 그 주변에는 이들을 후원하는 단체 요원들이 ‘I love Sex Worker’라는 큼지막한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고 서 있던 장면이었다. 이들은 성노동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에이즈 예방과 확산방지에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동일한 주장이 회의장에서 발표된 여러 논문에서도 지적되었다. 태국에서 온 한 보건운동가는 부시행정부가 기독교적 가치관에 근거하여 성노동자 지원사업에 사용되던 원조자금을 삭감해서 자신들의 모든 사업이 중단된 점에 대하여 울분을 토하였다.

태국은 성매매 현장에서 100% 콘돔착용 운동을 성공적으로 전개하였고, 이것이 급증하던 에이즈 감염율을 낮추는데 일조한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보건사업의 성공의 이면에는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며 자조활동을 지원했던 여러 운동단체들의 공헌이 컸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청교도적 근본주의 입장에서 성노동을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대외정책에서도 자국의 원조자금을 성매매와 관련된 사업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태국 같은 나라들은 천신만고 끝에 에이즈 확산억제의 고삐를 잡았다가 다시 놓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1년 전 성매매 방지법이 실시되면서 성노동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정부와 여성계가 이참에 성매매를 발본색원하려는 의지를 표명하자 포주들이 이에 저항하였고, 다수의 성노동자들은 유사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부 학자와 시민단체들도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갈등에서는 남성지배적 젠더관계 해소를 바라는 여성계와 이를 최저 빈곤층의 생존문제로 파악하는 계급론자들의 견해만이 대립되고 있다. 그런데 보건학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관련 업소에 대한 단속 위주로 진행되는 성매매 규제정책은 자칫 에이즈 확산을 부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에이즈 예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콘돔의 착용이다. 그런데 성매매 업소나 유흥업소에 대한 단속과정에서 발견되는 콘돔들이 성매매의 증거로 채택되면서 성노동자나 고객 모두 콘돔착용을 기피하기에 이르렀고 에이즈 예방을 위한 콘돔보급과 100% 콘돔착용 운동은 난관에 봉착하였다. 더욱이 여성부가 그러한 사업 자체를 정부가 성매매를 용인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사업을 그만둘 것을 강요하였고, 결국 사업은 중단되었다.

한국은 에이즈 감염이 낮은 국가이지만 최근에 예상보다 빠르게 감염율이 증가하고 있어 관련 정부부서나 전문가들의 걱정이 크다. 성매매 근절 정책의 대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아직 존재하고 있는 관련 업소 종사자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보건서비스를 제공하지 말고 그들이 요청하면 주라는 식의 여성부의 해법은 그들의 열악한 건강상태나 노동조건을 외면하는 고압적인 정책으로 보인다. 이제 여성정책도 건강지향적 고려가 필요한 시점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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