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쟁- 한국 경제 문제점 진단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대ㆍ경제학과)와 정승일 교수(국민대ㆍ경제학과)의 대담형식으로 엮어진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재벌체제,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 노동과 자본, 경제 영역에서의 국가 역할 등 한국 경제의 여러 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다. 『대학신문』에서는 이 책과 한국 경제에 대한 이번 호 김영철 교수(계명대ㆍ경제학과)의 문제 제기에 대해 다음호에서 장 교수가 답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 논쟁에 대해 관심있는 독자들의 의견을 기다린다.

카오스 이론이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는 언설을 유행시켰지만 그것은 비단 물리학의 세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한다. 이는 세상일을 이해하는데 있어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전체를 재구성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경우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전체 그림의 복원은 불가능하고 전체를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 본래 모습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한국 경제의 한 부분을 떼어내어 그것을 철저하게 해부하고 분석하면 그를 통해 한국경제의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시장 기능이 작동하여 모든 것이 조화롭게 균형에 도달할 것이라는 신념에 지배되어 한국 경제를 전체의 큰 틀에서 고민하는 부담을 스스로 던져버리는 방임적 자세를 나타낸다. 나는 한국 경제가 현재 어려움에 처한 것이 실은 이 지점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믿고 있는 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한국 경제의 큰 그림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매우 예외적인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 형식과 접근 방식에서 80년대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거대 담론과 그 논의에 참여한 사람들의 치열한 정신이 연상된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박정희 경제 성장 모델이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최근 한국경제를 진단하면서 이른바 ‘87년체제’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에 대하여 평소 비판적이었던 나로서 동지를 발견하는 기쁨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7년체제’라는 개념은 1987년의 민주화 운동을 통해 제기된 문제의식이 여전히 한국경제가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라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민주화라는 기준이 한국경제 개혁 과제 설정의 가장 중요한 준거틀로 활용된다. 말하자면, 재벌 해체를 통한 기업지배구조의 민주화, 관치금융 해소를 위한 금융 민주화, 정부의 시장개입을 억제하는 시장 민주화 등이 ‘87년체제’의 기준에서 최우선으로 추진되어야 할 경제 개혁 과제이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보다 구조적인 단절을 경험한다. 나는 한국경제가 현재 ‘97년체제’에 접어들었다고 규정한다. ‘97년체제’는 세계화의 위험성과 외국자본의 공격성에 한국경제가 전면적으로 노출되면서 성립되었다. ‘87년체제’에서 제기된 개혁 과제는 ‘97년체제’에서 연속적으로 계승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우선 순위나 해결 방식에서 수정을 요구받는다. 장하준, 정승일 박사가 책에서 재벌, 금융, 국가의 개혁 방향을 논의하면서 세간의 상식과 다른 시각과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대체로 ‘87년체제’와 ‘97년체제’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의 전환에서 나타난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경제의 ‘97년 체제’로의 전환에 주목하고 있는 나로서는 장하준, 정승일 박사가 이 책 ‘목차 내’에서 논의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대체로 입장을 같이 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 경제의 큰 그림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한국경제의 중요한 쟁점을 포함시키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어느 누구의 논점과 입장을 평가할 때 그가 어떤 내용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것보다 그가 무엇을 말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가라는 것이 보다 적실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나는 장하준, 정승일 박사가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이른바 ‘서울공화국’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울 공화국’을 해체시키지 않고 한국경제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논의 과정에서 그 중요성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 것인지, 내가 정말 우려하는 것은 장하준, 정승일 박사가 서울이라는 퍼즐 조각 하나만을 가지고 한국 사회 전체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는 우리나라 지식엘리트의 보편적 서울 중심사고에 함몰되어 있을 가능성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라는 말은 사실상 이 경우에 가장 합당한 말이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 경제는 지방을 중심으로 경제구조의 재편이 있을 때 비로소 패러다임적 전환이 가능하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지방대학 교수의 한갓 넋두리에 불과한 것으로 그냥 지나치고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그 의욕적인 책 제목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만의 말잔치로 끝나버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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