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아래로부터의 총학생회

사회: 2003년 총학생회(총학) 선거가 무산됐고, 매년 총학 선거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해 연장 투표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학신문』 설문조사에서 여전히 많은 학생들은 ‘총학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현재 총학생회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주우진(주): 총학처럼 본부에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공식적인 기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본부와 학생들 간의 공식적인 대화가 단절될 우려가 있다.

홍상욱(홍): 의사전달공식기구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일상공간에서 학생들이 정치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대표자를 뽑고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관철시키는 것은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과정을 직접 체험해본다는 것 자체로 굉장한 의미가 있다.
신의철(신): 사람들은 항상 공통된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의견을 모아서 모임을 만들지 않나.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모으고 실현하는 틀로서 학생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화(정): 한 개인이 거대한 사회에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총학은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함께 의사를 결정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장일뿐만 아니라 이 의견을 실제로 현실화시킬 수 있는 논의 기구로서 필요하다.

김두현(김): 크게 3가지 필요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의 의사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는 대표의 역할, 학생들의 권리가 침해됐을 경우나 본부나 외부단체와의 협의시 필요한 교섭의 역할, 학내의 많은 단체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중재의 역할이다.

사회: 총학생회가 전체 학생들을 대표한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또 총학생회의 ‘정체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해 달라.

주: 총학이 단과대 대표들과 회의하고 학내 언론과 인터넷의 여론에 귀 기울이는 등 학생들이 원하는 바를 수렴하는 일을 해야 한다. 총학 선거 때마다 선본들이 많은 공약을 내세우지만 설사 당선된 선본이라 해도 총학의 의견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공약을 재검토해야 한다.

: 학생들의 요구와 의사는 너무 다양한데 전체 학생들이 동의할 수 있는 ‘무엇’이라는 것 자체가 허구라고 생각한다. 또 학생회에서 말하는 것이 전체 학생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 총학은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적절한 입장을 표명하고 소통하면서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전체 학생에 대한 대표성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서울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요구와 이해를 담을 수 있는 종합적인 공간, 열린 소통의 공간이 총학의 정체성이 아닐까.

: 고대 그리스에 비유를 하자면 현재 서울대 학생들은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다. 그런데 정작 대표가 의사를 결정할 때는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고, 그에 따른 공적인 영향만 고스란히 받는다. 총학 입장에서도 등록금 투쟁 등이 방학에 주로 이뤄져 학생들의 의사를 모으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대표성을 승인하든 그렇지 않든 총학은 실질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 총학생회장의 한 마디가 서울대 학생들의 입장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이 학생회의 중점 사업으로 학생복지사업 등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현재 총학이 추진하고 있는 일과 유사한지 의문이다. 학생회의 활동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동의하고, 학생들과 소통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때 학생회가 대표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 대표성 문제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민주주의 관점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선거 때 학생들은 각 선본이 제시하는 몇 가지 기준들에 의해 대표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한 선본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다. 원론적으로 학생회의 정체성은 학생들과 의사소통하면서 요구를 실현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요구라는 것은 시대별로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학생회 활동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 전에 학생들의 요구가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변해야 한다. 투쟁의 중심으로서 역할이 부각되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학생들의 생활권익과 관련된 활동이 중요한 현재와 같은 시기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명현(이): 1970, 80년대를 거쳐 오면서 대학은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와 저항의 기제였다. 투쟁하지 않는 학생회는 있을 수 없었고, 그것이 곧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돼서 투쟁의 대상이 사라진 지금, 과거와 같은 투쟁의 정체성을 현재의 학생회가 견지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학생회의 정체성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다시 정립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정: 그러나 아직도 여성이나 장애인과 같이 억압 받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관련된 사회 문제가 많다. 학생회는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를 조망해내는 역할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내냐 학외냐, 투쟁이냐 복지냐를 따지기 전에 학생들이 다양한 현실을 조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김: 물론 그런 문제들이 중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존중할 수 있지만 관련 투쟁을 총학의 이름으로 추진해야 할 것인가는 의문이다. 시민단체 등의 다른 형태도 얼마든지 있는데, 왜 학생회의 이름으로 학생회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까지 끌고 가려고 하나. 굳이 총학이 해야할 일은 아니다.

사회: 자연스럽게 학생회 ‘탈정캄의 문제로 논의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정치적 색깔을 뺀 학생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신: 물론 학생들의 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요구 사항들을 실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학생들의 요구를 담아내기에 탈정치 학생회는 너무 작다. 지난해 대선이나 대통령 탄핵, 장갑차 사건 등에서도 볼 수 있듯 학생들은 생각보다 정치적 사안에 훨씬 적극적이다. 탈정치 학생회는 학생들의 정치적인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홍: 투쟁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이전에 학생회가 어떤 의제를 설정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나도 사실 ‘비권’이라는 이름으로 당선됐지만 당선된 뒤 이라크전쟁이 발발하자 그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또 국립대인 서울대는 교육부의 정책과 굉장히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대외적인 발언이 필연적이다.

이: ‘정치적’이라는 개념에 혼란이 있을 수 있다. 플라톤은 집단생활을 하는 한 인간은 정치적 존재(Political Being)라고 했다. 사람이 모이면 그들의 의견을 모아야 하고 그 과정을 ‘정캄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의 정치는 언제 어디서나 있다. 정치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과거의 극단적인 투쟁 중심의 성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 같다.

사회: 본부와 학생들 사이에서 학생의 의견을 대표하는 역할을 학생회가 수행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본부와 대등하고 효율적인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주: 학생회뿐 아니라 본부도 학생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총학과 본부가 윈윈(Win-Win) 대화를 한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부는 상당히 총학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고 학생처를 매개로 학생들의 의견이 대학 정책에 반영되도록 노력한다. 총학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요구하는 것에 대해, 본부는 총학을 대화와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요구 사항을 반영하도록 힘쓴다.

: 사실 서울대는 국립대이기 때문에 총학은 본부의 정책뿐 아니라 교육정책 전체에 맞닿아 있다. 본부가 학생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다고 하지만 본부와 학생 사이에는 권력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의 사회대 학생회장 무기정학 징계 건을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회: 총학과 본부가 교육환경개선협의회 등을 통해 대화를 해도 접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본부가 말을 할 부분인 것 같다.  총학은 학생들의 입장을 대표해 재수강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항상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본부가 대답을 해줘야 한다.

주: 예전에는 이미 결정된 사항을 놓고 논의를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요즘에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도록 노력하고 있다.

홍: 외국에서는 총장을 뽑을 때 학생들이 선거권을 갖기도 한다.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의 경우 학생이사가 결재권을 가지고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다. 대학에서 상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없다는 데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기성회 이사회도 다분히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장기적으로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김: 일반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본부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경우가 없고, 항상 총학의 대자보 등을 통해 본부의 입장을 전해 듣게 된다. 본부가 대학에서 악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고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침묵하고 있는 조직으로 비친다. 본부와 총학의 입장을 모두 직접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

신: 본부에서는 총학에 파트너십을 말하지만,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대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부는 학생들을 위해 등록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많이 걷을지도 고민할 것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본부와 학생이 대립할 수밖에 없다. 한편 본부와 대등한 협상은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과반수에 가까운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다면 본부와의 대등한 협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사회: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학생회의 한 학기 운영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무관심 속에 형식적으로 끝날 때가 많다. 전학대회의 의미, 현재의 전학대회가 가지는 한계, 앞으로의 발전방향 등에 대해 말해 달라.

홍: 전학대회에 학생회장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과/반 학생회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전학대회는 최소한의 마지막 선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학생회장들이 전학대회를 알리고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그 수단은 인터넷 등을 활용해 좀 더 기술적으로 첨단화할 필요가 있다. 또 전학대회 외에도 학생들에 대한 여론조사를 자주 하고, ‘SNULife’나 학내 언론과 협조해 학생들의 의견을 알아보는 등 비상시적인 의사소통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정: 전학대회는 총학의 방향을 단과대 학생회와 공유하고 주요 의제들을 결의하고 이야기하는 자리다. 절차적으로 최소한 지켜야 하는 보루다. 문제는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학대회 공청회는 단과대 학생회장이 아닌 일반 학생들의 참여를 위한 것인데 실제로 일반 학생은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어쨌든 전학대회는 학생 의사결정구조의 최소한이라는 전제를 두고 다른 의사결정구조 통로가 연구돼야 한다.

김: 전학대회에 일반 학생이 참여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총학-단과대 학생회-과/반 학생회의 구조 사이에서 일반 학생들이 그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대표들이 실질적인 학생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전학대회가 학생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논의하고 합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단순히 총노선의 내용을 확인하고 지난 학기의 성과를 평가하는 자리가 됐다.

신: 전학대회가 형식적인 것에 그치는 것은 전학대회 자체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과/반 학생회가 붕괴되면서 과/반의 일도 굉장히 많아진 상황에서, 굳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전학대회에 참가하기 어렵다. 의제 설정에 있어서도 ‘전학대회의 개회 시간을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냐’ 등 실질적인 문제들을 설정해야 한다. 또 전학대회는 사전 논의를 전제로 하고 안건을 통과시키느냐 부결시키느냐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어, 이견이 있을 때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견을 통과시키는 일이 아니라 원래의 안건을 부결시키는 일밖에 없다. 새로운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서는 온갖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전학대회의 실효성을 어떻게 살리느냐다.

김: 전학대회의 의제 자체가 학생 대표의 의견인지, 학생정치조직(학정조)의 의견인지 모르겠다.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다.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지각ㆍ결석을 밥 먹듯이 하고 전학대회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학정조에 참여하지 않는 대의원은 참석해봤자 허탈하기 때문이다. 설사 참여한다 하더라도 학정조의 기 싸움으로 비친다. 전학대회는 학생회가 학생들의 의견을 얼마나 수렴했는지를 평가하는 자리인데 참가하는 대의원의 범위가 너무 좁다.

사회: 마지막으로 앞으로 학생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말해 달라.

주: 학생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시로 묻고 관심사를 수용하는 것이 일차적인 역할이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학생들의 호응이 없을 것이다. 또 학생회가 단과대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 현재 반독재 민주화와 같은 이슈가 없어진 상황에서 등록금 문제 해결 등 복지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런 문제는 단과대마다 입장이 다를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단과대 학생회 중심의 학생회 운영이 이뤄져야 하고, 단과대 학생회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오늘날 학생들은 투쟁하기보다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창조하는 데 힘써야 한다. 대학에서 학문을 연구하면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학생회가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홍: 전반적으로 총체적인 일을 하는 단위보다 부분적이고 개인적인 일을 하는 단위들이 살아남는 추세인 것 같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인 측면에 대해 총체적인 고민을 하면서 중간에서 조율하고 중재하는 단체도 있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학생회다. 학생회와 학생들이 서로 다가가고 새로운 의제를 발굴해 나가야 하고, 동시에 학생들의 목소리가 본부에 반영되는 구조가 구축돼야 한다.

신: 학생회가 본연의 임무에 맞게 현재의 시대 흐름에 맞는 중요한 의제를 발굴하는 동시에 학생 사회의 큰 역할을 담당할 조직 시스템을 현대화ㆍ첨단화해야 한다. 또 회칙이나 규정들에 현실을 끼워 맞추려고 하지 말고, 현실에 맞게 회칙이나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 학생회와 학정조는 엄연히 다른 조직이다. 문제는 기존의 학생회들이 학정조의 구조로 운영되는 것이다. 그런 구조를 과감히 없애고, 학생들의 새로운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김: 현재의 학생회는 일반 학생들에게 문턱이 높아 학생들의 요구와 학생회의 사업들이 괴리돼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총학의 입장을 학생에게 강요하지 말고, 학생들이 원하는 복지 문제 등의 해결에 힘쓰는 작은 학생회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이 무대 전면에서 이야기를 하고 학생회는 그것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 학생회는 학정조와 분리해,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정: 현재 총학 선거 투표율이 낮긴 하지만 학생들의 의견, 요구를 실현해 주기를 원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학생회의 역할은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대에 따라 역할이 달라질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탈정치 학생회는 오히려 정치적인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다. 정치적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의견을 아래로부터 듣고 수렴하는 구조, 학생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학생회 사업 등에 주체가 될 수 있는 구조를 확립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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