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

탈북자다. 처음 서점에서 신경숙의 『외딴방』을 집었을 때, 신경숙씨가 유명 소설가이고, 또 『외딴방』이 그의 대표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한국에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새내기 탈북자였던 것이다. 소설의 한 구절에 있듯이 ‘수도꼭지 밑의 세숫대야처럼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이 몽땅 떨어져 나간 채 매일 아침 생애 첫 날을 맞은 것처럼, 낯설고 멍하기만’ 했다. 5년 전 그때는.

그래서 하루하루가 밀린 일수 찍듯 빠듯하고 초조했고, 그러다 조급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면 습관처럼 서점을 찾았다. 그러다 발견한 신경숙의 『외딴방』. 처음 ‘외ㆍ딴ㆍ방’하고 제목을 읽었을 때, 음절 사이로 느껴지는 깊은 숨골은 내가 걸어온 시간들을 마주 세워 놓았다. 그리고 ‘외딴’곳의 ‘방’에서 묻어나는 쓸쓸함은 내 마음과 오버랩되는 순간들을 연출해냈다. 그 놈의 방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외딴 방’은 신경숙씨가 유명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더 큰 애착을 느꼈던 인생살이의 ‘방’이다. 국가에서 공인받은 작가라야만 정식 작가로 인정했던 북한과 달리 잡지나 신문에 글을 싣기만 해도 작가라 불리는 남한, 작가양성체계가 허술해 보였지만 그 속에 재능있는 작가도 꽤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가가 구로공단 ‘공순이’였다니. 새로운 문화 속에서 ‘나도 작가일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고 있던 참에 ‘너도 괜찮아’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며 다가서는 사람 같았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책과 작품들 속에서 피로해졌고,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들었던 나. 게다가 옹졸해지기까지 했다. 그런 나에게 『외딴방』은 문학과 삶의 지식뿐아니라 작가의 용기까지 선물한 셈이었다. 참말로 일상과 문학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보이기만 하던 그때, 나는 신경숙의 『외딴방』을 통해 나만의 외딴방에서 나올 수 있었고, 지금도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황석영은 북한에 있을 때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작가였다. 그의 작품은 북한의 유명 작가들과 자주 나란히 놓여 있었고, 그래서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할 때도, 군(軍)작가로 활동할 때도 그의 소설은 내가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늘 끼어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꼭 한 번, 제대로 읽고 싶은 작가가 황석영이었다. 그의 대표작 『장길산』,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을 차례로 사다가 책장에 넣어두고, 서랍 속 곶감 빼먹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만난 책이 『오래된 정원』이었다.

『오래된 정원』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고, 또 대학에서 국문학을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전공서적보다도 그 책을 늘 끼고 다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장길산』에서 그토록 장엄하고 진중하던 그가 청춘남녀의 사랑을 다룰 줄이야. 연애라지만 흔해서 닳아빠진 ‘사랑’의 가벼움이 아니라 양 어깨를 지긋이 눌러오는 역사의 무거움과 함께 보통 사람들의 숨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또 이야기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의 긴 문장호흡이란…. 놀라웠고 부러웠다. 참으로 신선한 연애소설을 재미있고 기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는 한국으로 온 것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는 확신조차 안겨 준 소설이었다. 자유로운 시선으로 역사 넘나들기가 가능한 곳이 남한이라고 믿게 한 소설이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어떤 내용이든 부여되는 의미만 정당하다면 쓸 수 있다는 자유로움을 나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에서 처음으로 누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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