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사각지대, 탈출구를 찾아라

▲ © 이상윤 기자

"인권이요? 군대에는 그런 거 없어요."

강원도 모부대에서 근무하다 올 8월 전역한 아무개씨(23)는 '군대인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그는 "군대는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곳"이라며 "지난 군 생활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2002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휴가병과 예비역 3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군대 내 인권 실태 및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군인들 중 60.5%는 구타를, 65.8%는 가혹행위를, 그리고 9.1%는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군 인권 문제는 지난 7월 군내 성추행, 폭력 사건 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 심각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국방부는 지난 8월 1일 '군기강 확립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군대 폭력 문제에 관한 정밀진단을 실시하는 등 문제해결에 나섰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군의 한 관계자는 "공개적이던 군대 폭력이 이제는 은밀하게 행사될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화) 열린 '군대내 폭력 및 인권실태와 대안마련을 위한 포럼'에서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안정애 국방과제팀장은 "군법 이외에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군대폭력을 뿌리뽑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안 팀장은 "군대 인권문제는 권위주의적인 군사 문화가 지배했던 우리의 현대사와 맞물려 있다"며 "군 지휘관의 보신주의, 국가기밀보호를 핑계로 한 군의 성역화도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 성역화 탈피하고
제도적 틀 마련해야

그러나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성·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군대 인권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책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 23일(화) 열린 포럼에서는 독일에서 시행되고 있는 '국방감독관제도'가 그 대안으로 제시됐다. 의회기구에 소속된 민간인 국방감독관은 군대 정보 및 문서 접근권, 현지부대에서의 일반 군인 면담권, 사전예고 없는 군부대 방문권 등의 권한을 지니며 국방부장관 및 해당기관에 문제 시정 요구권을 행사하여 개선을 제안할 수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행규 변호사는 "인권 전문가, 여성단체 등 민간인이 적극 참여하는 국방감독관제도는 도입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감독관제도 도입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안주희 사무국장은 "독일은 군대 내에 우리나라 노조와 같은 신뢰장치가 있는 만큼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학군장교(ROTC) 전역자인 강모씨(27)는 "군사기밀이 많은 부대에 민간인이 개입하는 것은 국가안보상 위험의 소지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단체의 군문제 해결 노력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내년 2월 제대할 예정인 이모씨(23)는 "토론회, 공청회에서 이뤄지는 탁상공론은 군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좀 더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또한 "외부에서 괜히 문제만 더 악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편 국방부 측에서도 장병 인권 증진을 위한 나름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국방부는 시민단체 연합에 보낸 '군기강 확립 대책에 관한 질의에 대한 국방부 회신'에서 법규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민간참여를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비췄다. 이외에 국가인권위원회와 정치권에서도 문제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인권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군대의 인권 회복을 위한 정부·국회·민간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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