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감 갖춘 축구행정가를 꿈꾼다
현장감 갖춘 축구행정가를 꿈꾼다
  • 박정식 부편집장
  • 승인 2005.10.08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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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코치

지난 9월 28일(수) 대한축구협회는 예상을 뒤엎고 홍명보 전 국가대표 선수를 대표팀 코치로 발탁했다. 『대학신문』은 12일(수)에 예정된 이란전 선수 선발을 위해 아드보카트 신임감독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나 한국축구와 ‘인간 홍명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아드보카트 감독이 홍명보 코치에게 요구하는 것은 주로 어떠한 것인가.

선수들의 알려지지 않은 특성이나 성향 등을 많이 물어본다. 또 팀의 분위기에 따라 어떠한 조치를 해야 하는지, 문화적인 부분에서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 최근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일정을 보내고 있나.

신임감독이 입국한 뒤로 선수단 구성을 위해 감독과 함께 K리그를 관전하고 선수들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또 최근 ‘홍명보 축구 교실’을 열어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 축구교실을 열게된 이유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엘리트 축구가 아닌 일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레크리에이션 축구를 위주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축구 저변이 확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선수 육성이 목적은 아니지만 재능이 보일 경우 더 나은 환경이 있는 곳으로 보내 능력을 키우도록 할 생각도 있다.

사실 이번 대표팀 코치로 황선홍 전남 코치가 유력하다는 말이 있었다. 이밖에도 홍명보 코치는 황선홍 코치와 자주 비교되는데.

나와 황선홍을 라이벌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런 관계가 아니다. 연령대도 비슷하고 대표팀 발탁시기도 비슷해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면서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가 되었다. 코치 발탁이 결정됐을 때 미안한 마음이 앞서기도 했지만,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 축하해 준 사람도 황선홍 코치였다.

◆ 지도자보다 행정가의 꿈을 키워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계획대로라면 지금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하지만, 잠시 미뤄두었다. 스포츠 경영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의 몇 개 대학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나서 행정가로 나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뚜렷이 무엇을 하겠다고 마음을 정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모 스포츠지 기사처럼 FIFA 회장을 염두에 둔 적은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 지금까지는 선수 출신이 행정가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행정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현장감’이다. 행정가는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의 마음을 잘 알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선수 출신들은 현장 감각이 있어 아무래도 유리한 점이 많다.

◆ 우리나라 스포츠 정책의 미흡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의사결정자들이 스포츠와 무관한 이해관계로 자주 바뀌다보니 일관성이 많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모기업이나 어느 한 의사결정자에 의해 프로팀의 운영이 일관성 없이 추진되는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일본 J리그와 미국 MSL에서도 선수생활을 했는데, 우리나라와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선수들이 늘 약자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일본의 경우 구단은 선수를 중심에 두고, 선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선수들이 원하면 트레이드를 시켜주거나 해외진출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일본에서는 구단과 선수 사이에 신뢰가 형성돼 있다. 얼마 전 일본 프로축구 시장이 위축되자 J리그 차원에서 선수 전체의 연봉을 삭감한 적이 있었는데, 선수들은 이에 전혀 반발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스포츠를 모르면 비즈니스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축구시장이 미국에서 활성화되지 않았음에도 LA갤럭시 경기에 매번 8천명 이상의 관중이 들어왔다.

◆ 우리나라에서는 선수들의 의사에 따라 팀을 이적하기가 어려운가.

그래도 지금은 에이전트 제도가 발달해 선수들이 크게 불편을 겪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선수로 활동할 때만 해도 에이전트 제도가 발달하지 않았다. 내 경우만 해도 94년 미국 월드컵 이후 유럽 진출이 가능했지만, 에이전트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아직 우리나라의 에이전트는 선수들의 장래까지 함께 고민하는 큰 그림을 그려주지 못하고 잔심부름 정도를 대행하는 것 같다.

◆ 선수생활을 하며 가장 좋았던 적은 언제인가.

당연히 2002년 월드컵의 한 달이다. 그 중에서도 스페인전에서 승부차기를 성공시킨 그때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순간이 내 축구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다.

◆ 소아암 환자 돕기 자선경기 개최, 장학재단 설립, FIFA 반(反)인종차별 대사 등 축구 외에도 많은 활동을 했다.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박수를 받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남에게 봉사하고, 운동 외의 활동을 하는 것을 어색해한다. 하지만 여러 활동을 하면서 스포츠 스타들도 사회적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거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이 투표하게 만들 수도 있고, 어려운 이들을 도울 수도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선관위 홍보대사 역할은 계속할 생각이다.

◆ 한국 언론이 한국 축구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언론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스포츠 전문기자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타부서에서 일하던 기자들이 기사 몇 번 써보지 않고 한 개인을 전반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나 같은 경우 2001년 부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한번 만나보지도 못한 기자들이 “홍명보는 끝났다”는 기사를 써 화가 많이 나기도 했다. ‘그들이 나를 논할 자격이 있는갗라는 생각은 아직도 마찬가지다. 그런 평가가 설득력을 갖추려면 한 종목을 꾸준히 지키는 전문 기자가 있어야 한다.

◆ 대학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1학년 때 고ㆍ연전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미드필더로 경기를 뛰었는데, 70m정도를 혼자 드리블해 골을 넣었다. 골을 넣고 고려대 응원석에서 선수들과 응원단이 엉켜 골세레모니를 하던 도중 누군가에게 목이 졸려 이후 경기를 더 뛰지 못했다.(웃음)

◆ 『대학신문』 독자 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막연한 생각이지만  서울대생들은 도서관에 앉아 공부만 하고 있을 것 같다. 만약 운동을 소홀히 하고 있다면 하루 빨리 운동을 시작하라고 권하고싶다. 운동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서울대를 포함한 많은 대학에서 운동장이 사라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대체시설을 하루 빨리 마련해 학생들이 직접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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