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부족, 부실한 교육 시스템, 정부의 지원 부족 등의 개선 이뤄져야

국립중앙박물관이 10년 간의 준비 끝에 새 보금자리에서 개관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한층 발전된 모습으로 단장했지만, 우리나라 박물관의 전체적 현황은 아직 척박한 수준이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우리나라 박물관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오는 28일(금)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전 준비를 마치고 용산에서 개관한다. 세계에서 여섯번째 크기를 자랑하는새 박물관의 규모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주목할 만한 성장과는 별개로 현재 우리나라에 설립된 삼백여개의 박물관 대부분은  재정·운영·관리에서 척박한 실정이다.

◆ 부족한 전문인력

우리나라 박물관은 운영에 필요한 전문인력의 절대적 수가 부족하다. 국·공립 박물관 학예사는 공무원이므로 선발인원 수가 제한돼 있고, 사립 박물관은 기업의 후원을 받는 소수의 박물관을 제외하면 재정상태가 열악해 인력 고용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인력부족은 학예사의 업무과중을 야기한다. 지방 국립박물관의 경우 두세 명의 학예사가 모든 업무를 맡고 있으며, 기초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립박물관이나 영세한 사립박물관의 경우 한 명의 학예사로만 운영되는 경우도 많다. 국제박물관협의회의 분류에 따르면 박물관 전문직은 학예사, 교육담당자,  보존처리사, 전시기획자, 소장품관리자 등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연구·전시에서 유물수집·관리, 행정업무까지 학예사 한 명에게 집중돼 있는 실정이다.

◆ 인력 양성 체계의 미흡

현장실습 부족 등 현실과 괴리된 박물관 전문인력 양성교육도 개선돼야 할 점이다. 현재 학예사가 되는 과정은 고고학과, 사학과, 인류학과 등 관련학문 전공자가 국·공립 박물관 특채시험을 통해 입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다보니 전공지식 외의 박물관 운영 등에 대한 교육은받기 힘들다. 한 박물관 학예사는 “전시 기술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선배의 조언이나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며 관련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프랑스의 경우 박물관 전문인력은 매우 세분화된 교육을 통해 양성된다. 에꼴 뒤 루브르(Ecole du Louvre)는 프랑스의 대표적 박물관 전문인력 양성기관이다. 에꼴 뒤 루브르의 학제는 각각 우리나라 학사, 석사, 박사 과정에 해당하는 1기(3년), 2기(2년), 3기(3년)의 과정으로 나뉜다. 1기 과정에서 각 국가와 시대의 예술사에 대해 공부한 후, 2기의 첫 해에는 박물관학 특별과정을 이수하도록 돼있다. 문화재와 박물관학사, 연구의 기초, 제도행정, 유물의 보존·보호, 프로그램과 관람객에 대한 공부, 전시 기술 등 여섯 개의 박물관학 세부분야를 이 기간에 배우게 된다. 

우리나라는 91년도에 대전보건대 학부과정에 박물관과가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90년대 중·후반 이후 특수대학원에 박물관학 과정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중앙대 예술대학원에 박물관미술관학과,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미술관·박물관경영과정 등이 있다.

그러나 현재 도입된 박물관학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박사 학위 이상을 소지한 박물관학 전공자가 부족해 교원 수급이 힘든 실정이며, 이론과 실무를 겸한 인력이 적어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종호 교수(한국전통문화학교·문화재관리학과)는 “박물관 해석이나 교류 분야에 대한 전문가는 전무하고 얼마 되지 않는 박물관학 전공자조차 전시·기획 등 일부 전공에 편중돼 있다”며 “교과과정을 국제기준에 맞춰 박물관 전반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고 밝혔다. 

◆ 정부의 지원 부족과 자격증 제도의 미비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박물관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종합박물관은 각 분야별 1인 이상, 전문박물관은 1인 이상의 학예사 자격증 소지자를 고용해야 한다. 이는 실제 적정인원수와 동떨어져 있다. 그러나 이정도의 강제도 재정상황이 열악한 사립박물관에는 벅찰 수 있다. 한 박물관 관계자는 “인력을 채용할 능력이 안되는 영세 박물관이 등록을 위해 ‘자격증 빌리기’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전했다.

또한 현행 조세제도는 박물관 건립시 건축물에 대한 부과세 면제 조항을 국공립박물관으로 제한하고 있어 사립박물관은 면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조한희 교수(대전보건대·박물관과)는 “선진국처럼 기부금을 중심으로 한 운영이 힘든 국내 여건상 사립박물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며 “일정 기준이 되는 사립 박물관에는 얼마만큼의 지원을 해주는 식으로 규정이 구체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예사 자격증제도의 유명무실함도 문제다. 지난 2000년 전문지식과 실무능력을 겸한 학예사를 양성하자는 취지로 문화관광부가 주관하는 학예사 자격증제도가 도입됐다. 학예사 자격은 1급에서 3급까지의 정학예사와 준학예사가 있으며, 준학예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는 시험 합격 이후 경력인정대상기관에서 일정기간 실습해야 한다. 그러나 연수기관의 부족으로 실습기회를 갖기 힘들다. 또 자격증 취득자 수에 비해 학예직 채용이 부족하고, 자격증을 취득해도 이것이 국공립 박물관 채용시험에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 

◆ 이용자 중심의 운영능력 부족

관람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박물관 경영도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관람객 연구는 이제 시작단계다. 일부기관에서 프로그램 만족도 조사 등 관람객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나 아직 형식적인 수준이며, 이를 실제 전시 프로그램 기획에 이용하는 피드백 과정도 부족하다.

관람객 유치를 위한 관람객 대상 교육기능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학교, 지역사회와 연계해 다양한 계층에 세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박물관의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의 이와 같은 역할에 대한 인식은 점차 나아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의 박물관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박물관 학교와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개설 중이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8월 사무국과 학예연구실로만 구성돼 있던 조직에 교육문화교류단을 신설했다. 아직 소수의 대형박물관에서만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교육홍보분야가 점차 중요시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최석영 학예연구사(국립민속박물관)는 “박물관이 경험과 이론적 틀을 겸비해 과학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며 “이제는 고고학, 역사유물유적 중심의 박물관뿐 아니라 다양한 박물관을 전제로 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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