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나온 책,『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허수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6천원, 147쪽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이후 4년 만에 나온 허수경 시인의 작품집. 그녀는 1987년 등단한 후 독일로 유학, 뮌스터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다. 이상이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 건축가로서의 개성을 보여줬듯 시인은 고고학도로서의 경험을 시적 감성으로 풀어냈다.

「시간언덕」, 「오래전에 어떤 왕이 죽었다」 등에서 그녀는 유적 발굴 중 지층이 함축하는 몇 백 년의 역사와, 그 역사의 순환을 본다. 그것은 전쟁, 살육, 파괴의 순환이며 남성 중심적 역사의 순환이다.

그녀의 시에서 ‘해’는 남성성을, ‘달’은 여성성을 상징한다.「해는 우리를 향하여」에서 작열하는 ‘해’는 군대의 진격이자 지상을 지배하는 식민 권력이다. 이 때 폐허가 된 지상을 온기로 품는 것은 ‘달’. 「달 내음」에서 낮 동안 ‘자진자진 햇살엷 말라버린 세상은 밤이 되어 ‘달’이 품은 여성성에 위로받는다.

“비관적인 세계 전망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나지막한 희망, 그 희망을 그대에게 보낸다.” 시에 담긴 그녀의 메시지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