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어린이날 100주년 아동 인권 이야기

어린이날이 올해로 100번째 생일을 맞았다. 어린이날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를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으로 칭하며 경제적·윤리적 압박으로부터 어린이를 해방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아이를 한 명의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대우하고자 ‘어린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1921년 5월 1일부터 오늘날까지 아동 인권의 내용은 다양하게 변화하며 발전해 왔다. 어린이날 100주년, 아동 인권은 안녕한가. 아동 인권이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아동 인권이 걸어온 길

아동 인권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방정환과 천도교 소년회의 기여가 컸다. 1920년대의 사람들은 어린이를 ‘애녀석’, ‘아해놈’ 등으로 부르며 어른에게 종속되는 존재로 여겨 이들을 하대하거나 멸시하고는 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희망과 미래를 어린이에게서 찾았던 방정환은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어린아이를 높여 ‘어린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선언하고 이를 널리 보급했다. 또한 그는 어린이날을 제정하며 「어린이」, 「신소년」과 같은 어린이 잡지를 출간하고, 동요와 동화 등 어린이를 위한 문화를 형성하는 데 힘쓰며 천도교 소년회와 함께 어린이 해방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방정환의 어린이 해방 운동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주시오”나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와 같은 당부는 일제강점기의 사회적 분위기상 즉각적으로 수용되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어린이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농사일을 돕거나 공장에 나가 노동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가정의 재산으로 여겨지거나 이후에는 전쟁에 동원돼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과 발달권조차 보장받기 어려웠다. 해방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부가 수립되고 2년이 채 지나기 전에 6·25 전쟁이 발발하며 10만 명에 달하는 전쟁고아가 양산됐다. 시대 변화 속 국가 재건이라는 과제 앞에서 어린이의 권리는 후순위로 밀리고 말았다. 

사적 영역에서 아동 인권 개선은 더뎠고 사람들의 인권 의식도 미비했지만, 사회 제도는 방정환의 정신이 반영되며 차차 발전했다. 1954년 ‘의무교육완성 6개년 계획’이 수립돼 6년의 초등 의무교육제가 시행됐고, 1961년 보호자가 없는 아동과 빈곤아동의 보호를 골자로 한 아동 복리법이 제정됐다. 시간이 흘러 1991년에 정부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며 대한민국의 아동 인권 제도화가 가속화됐다. 이에 발맞춰 영유아보육법을 개정하고 청소년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아동 인권을 제고하기 위한 정부의 입법 노력이 있었다. 부모의 자녀징계권을 명시한 민법 제915조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를 1960년 제정 이후 61년 만인 지난해 삭제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훈육과 학대를 구분해야 하며, 아동학대를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해결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만든 결과다.

 

잔존하는 사각지대

지난 100년간 어린이 복지와 권리 측면에서 눈에 띄는 제도적 진전이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의 어린이를 다 포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가정이 그곳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아동 학대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돼 왔다. 명백한 신체적 학대일지라도 가정의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의 개입이 어려웠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희진 변호사는 “아동은 부모보다 취약한 존재이지만, 이것이 법적 지위가 낮고 권리의 내용이 적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신체적 폭력과 달리 상처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신적 폭력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임명호 교수(단국대 심리치료학과)는 “가정에서 이뤄지는 가스라이팅은 가해자인 부모도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일어나고, 피해자인 아동은 이를 양육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자책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동은 가스라이팅의 후유증으로 위축되고 자신감이 부족해진다”라며 “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으로 이어지기 쉽고 대부분이 무기력증을 겪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라고 설명했다. 

등잔 밑이 어둡듯이, 우리 역시 아동 인권 존중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유아와 어린이를 동반한 고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노키즈존’(어린이 제한 구역, No Kids Zone)이 대표적이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노키즈존은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노키즈존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아이의 행동으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상당 부분 책임을 지는 자영업자의 입장에서는 사고가 가져올 수 있는 영업적 손실을 애초에 방지함이 낫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노키즈존은 어떤 사유로든 어린이의 존재를 배제하는 혐오가 드러난 것”이라며 “의사소통이 서툴고 사회규범에 관한 이해의 정도가 다른 것은 그 사람의 특성이지,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덧붙여 “지식과 경험의 부족으로 배제될 가능성이 있는 취약한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사회 공동의 책무”라며 “노키즈존을 만들고 이에 동조하는 것은 어린이를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하는 낙인이자,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해도 된다는 차별적 시각의 표출”이라고 역설했다. 

종종 아동 혐오의 정서가 드러나기도 하는 우리의 언어 사용 습관에도 아동 인권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어린이를 비하하는 용어는 과거 ‘초딩’에서 오늘날 ‘잼민이’*, ‘급식충’*으로 변화했다. 흔히 사용되는 ‘-린이’라는 접사는 각종 표현과 결합해 ‘어떤 것에 입문했거나 실력이 부족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표현들은 어떤 일에 미숙한 사람을 정감있게 부르기 위한 목적으로 방송이나 공문서에서도 종종 사용된다. 하지만 인권위는 비하 목적이 아닐지라도 해당 표현이 사회적으로 무분별하게 사용될 경우, 어린이가 미숙하고 부족한 존재라는 편견이 강화될 수 있으므로 공공기관에서 해당 표현의 사용을 지양할 것을 권고했다. 이봉주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이런 신조어의 배경에는 어린이를 한 명의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부족하고 서투른 존재로 보는 아동 혐오 인식이 있다”라고 말했다. 어린이를 어엿한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는 언어 습관이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시발점이 된다.

아예 법의 울타리 밖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들도 있다. 출생등록이 되지 않은 미등록 어린이들은 이후 다른 권리들도 보장받지 못할 수 있기에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시민단체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가 진행한 ‘2021 출생신고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2020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아동복지시설에 간 아이들이 146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한국 국적이 아닌 이주 어린이는 국내법상 출생신고가 불가능하므로 취학통지서 발급 대상에서 제외돼 의무교육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 ‘미등록’이라는 특성상, 이들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우리가 만드는 아동 인권

아동 인권 보장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지만,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을까. 어린이 콘텐츠 제작 및 비평 사업을 진행하는 ‘타이밍포올’ 최숙 대표이사는 한국 아동 정책의 기조를 지적한다. 그는 “지금까지의 아동 인권 정책은 수년간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라며 “아동 인권은 국가별로, 그리고 한 국가 안에서도 문화의 흐름과 맥락에 따라 정의될 수 있기에 ‘보호’로 한정돼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어린이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어른과 같지만, 성장 중에 있고 보호자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를 지닌다는 점에서 어른과 다르다”라며 “어린이 인권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항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아동 인권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책임을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희진 변호사는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원칙적으로 신고 의무자의 출생신고가 있을 때만 출생등록이 이뤄지도록 규정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6년에 출생신고 의무자가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이 신설됐지만 지난해 10월까지 지자체장 직권으로 출생신고한 사례는 10건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여러 시민단체가 모여 결성한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국가의 출생등록 의무를 가능케 하는 출생통보제의 도입을 요구한다. 김 변호사는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아동의 출생을 통보할 수 있게 된다면 출생신고가 없더라도 신속하게 아동복지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기 때문에 위기아동 발굴과 보호에 기여하며, 국가의 공적 책무를 강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더라도 여전히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이주 아동과 의료기관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동을 아우르지 못한다”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제도 정비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시민사회와 우리의 몫이다. 아동이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SNS에 육아일기나 정보 공유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셰어런팅’*의 경우 우리의 세심한 관심을 요한다. 아동의 무분별한 미디어 노출은 어린이에게 성별 고정관념이나 외모지상주의와 같은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거나, 출연하는 아동의 초상권·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이명숙 변호사는 “부모가 자녀의 일상을 담은 사진, 특히 알몸 사진을 올리는 것과 같은 인권 침해의 여지가 있다”라며 “아이의 의사를 반영했더라도 아이가 성장한 뒤 과거 부모가 올린 사진으로 불미스러운 일을 겪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최숙 대표이사는 “보호자와 어린이 스스로가 경계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전국민적으로 디지털 시민성을 함양할 수 있는 미디어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경각심과 제도의 모니터링도 계속돼야 한다.

 

아동 인권의 발자취를 따라가 마주한 현실은 마냥 행복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디지털 환경에서 발생하는 아동 인권 침해와 같이 매 순간 새로운 문제를 직면하는 아동 인권의 다음 한 걸음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 한때 아동이었음을 떠올려 보며 온 세상이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5월에, 어린이의 삶도 아주 푸르기만을 바라 본다. 

*잼민이: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 속 어린 남자아이 음성합성 시스템의 이름인 ‘재민’에서 유래해 모든 초등학생 혹은 민폐를 끼치는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를 지칭한다.

*급식충: ‘급식’과 벌레를 의미하는 한자 ‘충’(蟲)의 합성어. 급식을 먹는 초·중·고생들 중 민폐를 끼치거나 비행을 저지르는 학생들을 비하하는 말.

*셰어런팅: ‘공유하다’의 ‘share’와 ‘육아’의 ‘parenting’이 합성된 용어로, 보호자가 아동의 일상이나 사진을 SNS에 공개하는 일.

 

삽화: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인포그래픽: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