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식인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 지식인상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짧은 인생을 살아온 필자가 윗세대에게 무례함을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70년대와 80년대 일본의 진보성향의 월간지 세까이(世界)에 'T·K 生'이라는 필명으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써 국내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과 민주화 과정을 일본과 다른 나라에 알리는 역할을 했던 지명관 한림대 교수를 뵌 적이 있었다. 80세를 앞두고 계신 선생님의 지난 삶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야말로 선생님이 '살아있는 역사'가 아닌가 싶었다. 5·16 직후 박정희 정권이 '5·16은 4·19의 계승이다'는 주장을 하자 '5·16은 4·19의 계승이 아니다'는 글을 자신이 주간으로 있던 '사상계'에 실어 본격적인 대사회적 발언을 하기 시작한다. 65년 한일회담을 앞두고 학생들 사이에 반대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질 때는 「조선일보」에 '가두에 끌어낸 것은 누구인가'라는 글을 써 박정희 정권을 공격한다. 물론 선생님은 자신이 강한 글을 쓰게 된 탓을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었던 선우휘씨에게 돌렸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에는 의미를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이 운명을 결정한 경우가 많아요. 그 당시 역사는 1965년 사람들의 생각을 훨씬 뛰어 넘어 전개되었어요. 나중에 보면 한계로 인식되었지만 그 당시 현장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지요. 그래서 역사에 대해 자신이 없어요. 당시엔 전력을 다해 정당하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지만, 역사의 다른 시점에서 볼 땐 늘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슬픔을 가지지요."

72년 '더 이상 국내 일에는 관여를 하지 않겠다'며 일본으로 떠난 선생님은 8월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다시 펜을 든다. 국내인사들이 극비리에 전달해준 자료를 토대로 '세까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5·18 직후 '반민주화의 폭력', '어두움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상황을 국외에 알렸다.

"올해 3월 북한에 갔어요. '교류를 해야 한다', '식량지원을 해야 한다' - 당연한 이야기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북한정권을 연명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이 안 서요. 언제까지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인지. 북한 주민들은 하루가 급한 사람들이에요. 그렇다고 전쟁을 벌인다면 그때의 희생을 생각하면 도무지 판단이 안 서요. 자신이 없어요. 발언을 보류했어요." 지난해 대선 직전 20여 명의 지식인이 모여 노무현 지지성명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대통령인수위원회에 참여, 취임사를 쓰기도 했다.

"만나자마자 결별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정권이 주는 선물이 있어요. 이젠 대통령이 모든 것을 챙기고 끌어가는 시대는 끝난거죠. 대통령의 역할을 하나의 행정부 역할로 축소시켜야 합니다. 그런 시대를 종결하는 데 이 정권이 긍정적인 역할을 한 거지요."

우리시대의 지식인 상을 반성하며

일본문화 개방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송두율 교수, 현정부와 언론과의 관계에 대한 거침없는 소리를 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지식인으로서의 삶의 일관성을 엿볼 수 있었다.
"세계통신에 실린 글 정리 안하실 건가요?" "별로 읽고 싶지 않아요. 그건 그 시대의 증언이거든. 지식인의 아집으로 쓴 글이지."

이미란
행정대학원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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