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모임 같은 데서 직업상 받는 질문 중에 나를 당혹케 하는 것의 하나는 "왜 농사 지어서 먹고 살기가 어려운 거죠?"라는 것이다. "한국은 좁은 나라이어서 농사 지을 땅값이 비싸고 또 산업화가 상당히 진행된 나라이어서 농촌임금 또한 높고…"라고 대답할라치면 곧바로 "미국은 땅이 넓은 나라인데도 농사 짓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기 어렵고, 중국은 농촌지역 임금이 낮아도 농촌에서 살기 싫어 도시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농업은 결국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것 아닌가요?"하는 2차 질문이 들어 온다. "사실 전세계의 농업이 모두 어렵습니다"라고 상대 편의 손을 들어 주면 이번에는 왜 하필이면 그렇게 잘 안 되는 것을 붙들고 씨름해야만 하는 직업을 택했냐는 안타깝다는 표정이 돌아온다.

내가 좋아하는 톨스토이 선생께서는 일찍이 당신의 독자 중에 농업경제를 전공하는 사람 하나가 이러한 곤경에 빠질 것을 예견하시고 농업과 경제에 관한 적절한 우화를 지어 놓으셨다.

톨스토이의 단편 중 가장 유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바보 이반'은 삼형제 중 막내인 농사꾼 이반이, 삼형제가 다정하게 사는 것을 시기하는 도깨비들의 온갖 훼방 속에서도 군인인 맏형과 상인인 둘째 형을 먹여 살리는 이야기이다. 이반을 비롯한 삼형제를 못살게 구는 도깨비는 자연과 같은 존재로서 약초, 군대, 돈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온갖 예기치 못한 문제를 일으키고 사람들의 본능을 부채질하여 탐욕스럽게만든다. 이반의 동반자인 이반의 누이는 이반처럼 바보는 아니지만 귀머거리에 벙어리이어서 말을 들을 수도 할 수도 없다. 이반의 두 형은 명예와 돈을 쫓아 이반을 떠나지만 결국에는 이반에게 돌아온다. 이웃 나라는 군대가 없는 이반의 나라를 침략하지만 이반에게 감화되고 만다. 이반은 농업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하느님의 명을 어기고 사람을 함부로 도와주려다 하느님에게 쫓겨 난 천사의 이야기로서 오늘날의 경제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추락한 천사는 깨달음을 얻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생명을 내려주시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도록 바라고 계신다…그렇기 때문에 사람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계시하지 않았던 것이다…모두가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사실은 사랑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한편 아담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공익을 추구하려는 의도 없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는 그 과정(경쟁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 결실(공익)도 얻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어려움에 처한 농업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랑, 즉 보조인가, 경쟁, 즉 개방인가? 아니, 사랑과 경쟁이 서로 다르기나 한 것인가? 잘 모르겠거든 이반을 생각해 보자. 이반은 자기가 왜 형들처럼 살지를 못하는지, 이반의 형들은 왜 이반처럼 살지 않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반을 결국 이롭게 한 것은 군대나 돈이 아닌 약초였고,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이반의 누이는 손에 굳은 살이 박히지 않은 사람은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는 단 하나의 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 이반은 이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농업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이태호 교수
농생대ㆍ농경제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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