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를 만나다 | 『군, 인권 열외』 저자 김형남 사무국장 인터뷰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고? 아니다. 군대에 가는 이들은 이미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이 가는 곳에서 사람대접 받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비정부기구 인권 단체 ‘군인권센터’에서 7년째 활동하고 있는 김형남 사무국장이 보고 느낀 군대도 그랬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군대가 지키지 못한 사람이 계속 생겨나고, 그들의 이야기는 잘 전해지지 않는다.

 

군대를 바꿔야겠다

26살, 늦은 나이에 간 군대에서 “그냥 참고 살 걸 그랬어요”라는 후임의 한마디에 김형남 사무국장은 군대를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간부 식당의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조리사인 군무원들은 매우 폭력적이었다”라며 “직접 때리지는 않아도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병사들이 빠릿빠릿하지 않다고 느끼면, 소리를 지르고 칼을 집어던지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라고 말했다. 참다못한 그의 후임들은 폭언을 일삼던 군무원들을 신고했다. 김형남 국장은 “그들이 전출을 가며 문제는 해결된 듯 보였지만, 후임들의 군 생활은 다른 면에서 더 어려워졌다”라고 말을 이었다. 그는 “간부들은 오히려 원칙대로 하자면서 다른 방식으로 후임들을 괴롭혔다”라며 “후임들은 ‘적당한 선에서 넘어가지 않는’ 골치 아픈 존재로 각인됐다”라고 덧붙였다. 김형남 국장은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친구들이 처음 겪은 조직 생활에서 배운 것이 고작 ‘부당함은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군대를 변화시키겠다는 다짐은 전역 열흘 뒤 곧바로 군인권센터에서 활동가의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김형남 국장은 “군대를 바꾼다고 세상이 다 바뀌지는 않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하게 만들어내는 변화가 결국 세상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군 인권 활동가로서 쉬지 않고 달려왔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때 가장 뿌듯하다는 그는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그중 제일로 꼽았다. 그는 “군인권센터가 2009년부터 병사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자고 제안했지만, 당시에는 ‘빨갱이’라며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라며 “2014년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국방부에서 병사의 휴대전화 사용이 공식 논의됐다가 거센 반발로 무산되고, 2018년이 돼서야 시범 운영에 대한 국방부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병사들의 손에 휴대전화가 쥐어지면 기강이 해이해지고 군사 보안이 무너지리라는 우려가 무색하게도 군대는 아무렇지 않게 굴러갔다. 오히려 간부들은 카카오톡 등을 이용해 병사들을 쉽게 관리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았고, 휴대전화라는 사적 공간이 생기자 병사들 간 괴롭힘도 줄었다. 김형남 국장은 “특히 휴가를 나가지 못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휴대전화가 없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라며 “휴대전화라도 있었으니 병사들은 그 힘든 시간을 참고 견딘 것”이라고 안도했다.

 

죽어야 바뀌는 조직

아이러니하게도 변화의 순간에는 늘 안타까움이 공존했다. 김형남 국장은 “변화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죽음을 밟고 따라간 것들이었다”라며 “그 죽음을 떠올리면 성과라고 할 만한 변화를 만들어내도 기쁘지 않았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故 변희수 하사의 전역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을 때를 회상했다. 그는 “정작 기뻐해야 하는 당사자가 없으니 승소했어도 오히려 화가 났다”라며 “누군가가 죽어야 변화하는 현실에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왔다”라고 토로했다.

故 윤 일병의 죽음을 계기로 논의된 군 옴부즈맨 제도(군 인권보호관 제도)*도 마찬가지였다. 윤 일병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면서 장병의 인권 침해를 구제할 수 있는 외부 독립 기관을 설치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결과는 엉망이었다. 그는 “군 인권보호관의 권한을 최소화하려는 국방부와 공방만 벌이다 故 이예람 중사의 죽음을 계기로 군 인권보호관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 올해야 시행됐다”라며 “그마저도 국회가 이를 통과시키는 데에만 급급해져 제도의 본래 취지가 훼손됐다”라고 지적했다. 군 인권보호관이 군부대를 방문 조사하려면 해당 군부대의 장에게 그 취지·일시·장소 등을 미리 통지하도록 규정된 것이다. 군 옴부즈맨 제도의 핵심인 ‘불시 방문 조사권’의 의미는 온데간데없다. 

“그러나 반복되는 문제에는 분명한 구조적 원인이 있다. 그래도 된다는 인식의 권력.”

- 『군, 인권 열외』 중

죽음이 변화의 대가인 양 계속돼도 군대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군인을 사람보다 부속품에 가깝게 여기는 인식은 군의 인력 운영 구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김형남 국장은 “보통 100명의 하사가 임관하면, 4년이라는 의무 복무 기간을 지낸 후 군 생활을 그만두거나 장기 복무 선발에서 탈락하는 등의 이유로 60명 정도는 군을 떠나고 40명 정도만 장기 복무를 한다”라며 “장기 복무에 선발된 40명 중에서도 중간에 이탈하는 인원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100명을 뽑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대해 “100개의 물건을 사놓고 쓸 만한 물건 40개만 쓰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인력 구조하에서는 구성원이 겪는 고충이나 문제를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없어진다. 군 조직과 잘 맞는 사람은 알아서 적응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낙오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군에게 죽음은 관리돼야 하는 위험 요소일 뿐이다.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덮는 데 주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사람이 무언가를 숨기고 거짓말을 하는 유인은 아주 간단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이득이기 때문이다. 김형남 국장은 “군에서는 문제를 감추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에 일단 숨기고 본다”라며 “게다가 그럴 수 있는 여건까지 갖춰지니 진실이 탄로 나도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만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한 “군은 문제가 발생하면 어떤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울지가 아닌 군에 남아 있을 사람들을 어떻게 지켜줄지에 방점을 찍는다”라며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살한 병사도 아니고 성추행 피해로 아픔을 호소하는 하사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씁쓸해했다. 

이에 김형남 국장은 군이 사건을 은폐하는 체계를 잘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어떤 죽음이건 장례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병사 한 명을 장례식장에 보낸다”라며 “그는 장례를 돕기도 하지만 ‘유가족이 기자랑 접촉한다’, ‘유가족 중 삼촌이 주요 인물이다’ 등 장례식장의 모든 상황을 상관에게 보고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철저한 위계 사회인 군대에서는 군사경찰(헌병)·군 검찰·군사법원이 모두 장성급 지휘관의 부하이기에 공정한 재판과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라며 군 사법 체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8월 군사법원법이 개정돼 관할관 확인조치권*과 심판관 제도*가 폐지됐지만, 민간으로 이관하는 것이 원칙인 성범죄와 피해자 사망 사건 관련 조항은 아직 개정이 필요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성범죄와 피해자 사망 사건의 경우 국가 안전보장, 군사기밀 보호 등의 사정이 있을 때는 국방부 장관이 해당 사건을 군사법원에 기소하도록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은 그 특수성을 방패 삼아 투명해야 하는 것도 불투명하고 폐쇄적이게 운용한다.

 

조직이 낳은 피해자

“진짜 문제는, 여전히 우리 군대가 마음만 먹으면 남의 인격을 짓밟고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조직 문화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 『군, 인권 열외』 중

군에는 절대적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위계에 기반한 군의 조직 문화가 있다. 김형남 국장은 “누군가의 명령에 복종하고, 그것이 부당할지라도 눈감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라고 지적하며 “한국 사회에서 군대의 조직 문화는 세대를 타고 전해진다”라고 말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도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군대식 삶의 태도를 체화한다. 특히 모든 남성이 병역 의무를 지는 우리나라의 특수성은 이를 강하게 지탱한다. 그는 “가혹한 폭행이나 살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군의 특수성이라는 이름 아래 용인되는 인권 침해나 범죄를 통해 조직 문화는 자연스레 스며든다”라며 “이로써 군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어느새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게 된다”라고 되짚었다. 

김형남 국장은 이렇게 답습되는 침묵의 굴레를 끊으려 했다. 그는 “군대의 조직 문화를 경험하고 체화한 모든 이들이 피해자다”라며 “특정 조직의 잘못된 문화에 자연스레 침묵하고 동조하는 것은 군대가 남긴, 겪지 않아도 됐을 피해”라고 강조했다. 군의 조직 문화에 기반한 사고방식은 이처럼 군대 밖에서도 유지돼 이상하리만치 억압적인 조직 문화가 굳어진다.

조직 문화를 체화한 개인은 부조리한 군대 문화가 변화하는 것을 막는 장애물로 작동하기도 했다. 김형남 국장은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라며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여론을 파악해보니 이에 가장 거세게 반대한 집단은 다름 아닌 30대 남성이라고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불과 몇 년 전 군대에서 휴대전화를 누구보다 사용하고 싶었을 이들이 막상 군대를 나오면 ‘군대는 이래야 해’라고 이야기한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군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 덕에 군대는 더디게나마 나아지고 있다. 김형남 국장은 “거대한 조직에 속한 개인이 홀로 조직에 맞서 무언가를 바꿔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그렇기에 그 한 사람의 선행과 용기에 의지하는 구조는 잘못됐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군이 부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 문화가 유지되는 데 내가 기여한 바는 없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사람답게 존중받는 군인이 다른 사람도 지킬 수 있다. ̒요즘 군대는 과연 그런가.”

- 『군, 인권 열외』 중

 

*옴부즈맨 제도: 1909년 스웨덴에서 유래해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목적으로 고안된 일종의 행정 감찰관 제도. 

*관할관 확인조치권: 형이 과중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국방부 장관 등이 선고된 형의 3분의 1 미만의 범위에서 감경해주는 것.

*심판관 제도: 법관의 자격이 없는 장교가 재판부에 참여하는 제도

 

 

 

군, 인권 열외

김형남

휴머니스트

300쪽

2022년 10월 24일

 

 

 

 

사진: 카와하라 사쿠라 기자

sakusakukk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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