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연 사회대 교수·외교학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지난 주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1987년 유렵단일의정서의 발효는 유럽의 시장통합 확대를 촉진시켰다. 그 결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은 공동협력체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고 1989년에 APEC을 출범시켰다. 초기에는 미국과 일본의 미온적 태도가 한국과 호주의 능동적 설득과 대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의 배타적 경제협력체로 인한 미국의 배제가 또 다른 전략적 요충지인 동아시아에서 반복되는 것을 더 이상 관망할 수 없었다. 결국 미국은 1993년에 각료급회의에 그치던 APEC을 정상회의로 승격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그 이후 APEC은 사실상 미국의 주도 하에 이끌려왔다.

중국은 1991년에서야 APEC 회원국이 되었다. 중국의 부상은 종종 지난 세기에 일본과 미국에게 강탈당한 지역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중국도 이러한 관측들을 애써 부인하려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느슨한 형태의 자발적 참여포럼인 APEC이 중국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중국이 폐쇄된 형태의 지역 공동체를 꿈꾸며 동아시아 지역주의 부상을 도모하고 있다는 미국의 우려어린 눈길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가? 무엇보다 아세안+3국 정상회의에서 전격적으로 합의된 제1차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한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모두 인정한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이유와 동아시아 공동체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대응방법을 평가하는 데에서는 차이가 난다.

한편에선 미국의 APEC 참여와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불참이라는 사실 자체를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배제한 다자적 안보틀을 구상하는 중국의 영향력이 구체화된 증거로 본다. 또한 이를 효율적으로 제어하지 못한 미국 외교력의 실추 징표로 간주한다.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공동체의 발전이 미국의 국익을 저해하기 때문에 미국이 그러한 노력을 저지할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에 반해 다른 한편에서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부상이 국제적 통합의 맥락에서 진행되는 점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역내 경제의 주요 행위자인 미국을 배제한 폐쇄적 지역주의는 궁극적으로 중국의 이익에도 반한다. 결국 역내 중국의 역할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APEC 출범 초기에 보였던 미국의 신중한 관망에 준한다. 근본적으로 역내 국가 간 상호작용은 동시에 각국의 대미관계 조율을 수반한다. 따라서 미국은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관망자적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주시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APEC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한국의 핵심 외교과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미국과 역내 국가들은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이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협력체의 발전이 결코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공감대 형성에 적극적으로 일조할 수 있다. 첫째, 동아시아 지역공동체의 정립을 통해 역사, 영토 등 근대적 형태의 갈등관계를 탈피하지 못하는 동북아 3국의 긴장관계가 완화될 수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 둘째, 상승구도 속의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틀도 마련될 수 있음을 각인시켜야 한다. 결국 전략적 경쟁관계에 처해 있는 미-중 관계에 긴장완화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잠재력이 우리에게 있다. APEC 정상회의는 이 현명한 설득외교의 가능성을 다시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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