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량적 평가에서 정성적 평가로 변화 움직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지난 1992년부터 학문분야평가를, 1994년부터 대학종합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대교협 평가는 대학이 자발적으로 시설, 연구 분야에 재정적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긍정적 측면이 있으나 평가방식에 대해서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사회학회가 대교협의 학문평가 불참을 선언했다. 또 서울대가 8월 대학종합평가에 불참할 것을 밝힌 데 이어 10월에는 고려대 등 7개 대학의 국어국문학과가 대교협 학문평가 거부의사를 표명했다. 사회학회의 경우 당시 ▲획일적ㆍ양적 기준의 평가에 대한 타당성에 의문이 들며 ▲각 대학의 특성을 무시하고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불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른 곳의 불참이유도 이와 유사하다.

교협 학문평가의 경우 매년 2~3개의 학문분야를 선정해 교육목표, 교육과정 및 강의, 교육여건과 학생복지, 연구와 교수개발, 교육방법 등에 대해 세부적으로 평가한다.

지난해 대교협 신문방송광고홍보학 학문 평가에 참여했던 언론정보학과의 윤석민 교수는 “대교협 평가가 커리큘럼 등의 개선에 동기 부여가 된다”며 긍정적 측면에 수긍했으나 “교육, 연구의 질을 수치로만 환산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대의 한 교수도 “대교협 평가기준은 학문 외적인 부분에 대한 비중이 너무 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공계 분야의 경우 과거에는 교수연구업적 평가 등에서 단순히 논문의 수만을 평가기준으로 삼았다. 이후 논문의 질을 평가에 반영하고자 1990년대 후반부터 과학기술인용색인(SCI, Science Citation Index)의 영향력 지수(Impact Factor)를 도입했다. 영향력 지수란 특정 학술지가 발간된 지 2년 이내에 해당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인용된 평균횟수를 뜻한다. 지난해의 경우 「셀」지의 영향력 지수가 40이었는데, 이는 「셀」지에 실린 논문 한편이 일 년간 평균 40번 정도 인용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영향력 지수는 개별 논문이 아닌 학술지의 수준만을 반영하며, 2년 이내의 인용 빈도만을 측정한 지표라는 한계가 있다.

논문 수나 인용 빈도만을 중시하면 학문의 특수성을 간과할 우려도 있다. 예를 들어 수학분야는 학문의 특성상 논문 발표 수와 인용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또 정진하 교수(생명과학부)는 “생명과학에도 한창 주목받는 분야와 고전적 분야가 있다”며 “기초과학 분야의 경우 중요성에 비해 인용빈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병문 교수(화학부)는 “연구 성과에서 논문 수나 인용 빈도를 중시하는 풍토는 연구자들이 장기적이고 위험성이 있는 연구를 피하고 단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에만 치중하게 만들 수 있다”며 현행 연구평가 체계의 허점을 비판했다.

인문계열 평가의 경우에는 학문 특성상 뚜렷한 평가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지난해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인문학 관련 연구결과 평가모형 개발’ 연구에 참여한 박태균 교수(국제대학원ㆍ국제학과)는 “평가의 본질적 목적은 질적 수준의 향상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외형적 가치가 주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인문학의 경우는 학문 간 특수성을 더욱 섬세하게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서경호 교수(중어중문학과)는 “학술서적 한 권을 저술하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는데 교수임용이나 승진 심사시 이를 논문과 일률적으로 비슷하게 평가하는 것은 문제”라며 평가의 획일성을 지적했다. 또 서 교수는 “현재 형식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논문에 대한 리뷰가 좀 더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처럼 기존의 계량적 평가의 한계가 지적되고 평가방법의 보완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자연대갖해외석학초청평갗라 불리는 외부자문단을 통한 정성적 평가를 도입했다. 공대도 내년에 이를 실시할 예정이며, 포항공대도 비슷한 유형의 평가를 준비 중이다.

한편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는 대학과 대학원 등 고등교육평가를 전담할 고등교육평가원의 설립을 추진 중이다. 교육부 평가지원과 측은 “고등교육평가원이 설치되면 미국의 랜드연구소와 함께 학생의 학습력 향상 정도, 학생의 지식 실무적용 능력을 직접 평가하는 등 질적 평가모형을 개발할 것”이라 밝혔다.

인증평가의 활성화도 기존의 평가를 개선하려는 움직임 중 하나다. 인증평가원은 각 학문분야의 교육부문에 대한 평가를 담당한다. 현재 국내에는 한국공학교육인증원, 한국의학교육평가원, 한국간호평가원 등의 민간 인증기구들이 있다. 공대의 경우 올해 처음으로 공학교육인증원에 인증 신청을 했으며, 내년에 심사를 받게 된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의 인증평가에 참여했던 서종원 교수(한양대ㆍ토목공학과)는 “평가결과가 교육 프로그램 개선에 실제로 반영됐는지를 설문 데이터 등을 통해 엄격하게 측정하는 것이 기존 평가와의 차이졈이라며 평가가 실질적 교육여건 개선과 직결되는 점을 인증평가의 장점으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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