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을 담아 세계로

최근 수년 간 우리는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에서 ‘한류(韓流)’라는 표현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이 ‘한류’는 특히 대중 음악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일본 오리콘 앨범 차트 1위 보아’라는 소식 등은 분명 대한민국 대중 음악이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부분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최근 수년 간 해외에 진출한 우리 가수들이 이룬 한류열풍이 진정 우리의 현대 대중문화, 나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정신을 담은 것인가. 이 점은 우리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어봐야 하는 화두이다.

한류열풍이 최근 수년 간 우리 곁에서 화두가 됐을 때, 우리는 ‘월드뮤직(World Music)’이라는 또다른 용어를 접할 수 있었다. ‘세계의 음악’이라는 이 평범한 용어는 한 때 ‘제3세계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대중음악 장르다. 80년대 후반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이 ‘월드뮤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역과 인종을 막론하고 인간 본연의 정서인 희노애락을 담은 음악’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듯 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기초적 조건이 있다. ‘월드뮤직’으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지역의 언어와 관습, 문화를 음악으로 담아낸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로는 지역과 언어, 인종과 시대가 달라도 그 음악이 담아내는 고유 정서를 다른 지역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민족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가 영미권 대중 음악, 일명 팝 음악(popular music)이라고 부르며 즐겼던 음악은 열외로 정리된다. 이런 전제 조건을 담아 우리가 월드뮤직으로 부를 수 있는 해외의 음악은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 최근 수년 간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음악계를 강타한 쿠바음악이나 포르투갈 파두(Fado)음악, 현대 아프리카 가수들의 음악 역시 이 범주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한류 열풍의 주역들은 과연 ‘월드뮤직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정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이다. 월드뮤직은 현대 정치사를 고스란히 반영하며, ‘시대정신(Zeitgeist)’을 반영하는 준엄한 음악이다. 브라질, 그리스, 칠레, 아르헨티나 등 월드뮤직의 강국들은 모두 군사 쿠데타를 경험했고 또한 불의에 항거하는 음악인들이 있었으며 시대정신을 담은 음악이 있었다. 우리나라 대중 음악 역시 유신 정권에 대항하던 통기타 가수들과 포크 음악이 있었는데, 정치적 이슈를 잃은 90년대 이후의 우리나라 대중음악에는 시대정신이 사라져버렸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현재 우리의 대중 음악은 ‘한국어로 만들어진, 그러나 음악과 내용은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지 못한 국적 없는 음악’이 돼 버렸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누구보다 ‘노래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갖춰진 우리의 가수들(일본에서 인기를 얻는 보아의 가창력을 보자)은 세계 어느 가수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그리고 지금 당장은 유치하더라도,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정서를 담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고, 최소한 이런 시도를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이뤄 낸다면 우리의 대중 음악은 세계 속의 월드뮤직이 될 것이다.

황우창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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