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지음, 천경록 옮김, 책갈피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
흔히 인류의 역사를 거대한 서사시라고 한다. 지은이는 인류의 태초부터 오늘에 이르는 그야말로 아마존 밀림처럼 복잡하고 태평양처럼 심원한 사건들의 혼돈에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질서를 부여해 마치 거대한 프레스코 벽화처럼 우리의 눈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파라오로부터 온갖 황제와 왕들, 현대의 권력자들에 이르는 지배자들의 휘광을 넘어서 기술의 발전, 계급구조와 충돌에 대한 그 영향, 사회경제적 변화의 의미, 이 틈새에 보이는 민중들의 모습, 더 나아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전망까지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잿빛의 21세기를 맞이하여 역사의 진보가 여전히 가능함을 웅변해준다.

『괴짜 경제학』, 스티븐 레빗, 스티븐 더브너 지음, 안진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안동현 교수(경제학부)
이 책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학의 이단아 스티븐 레빗이 경제학을 알기 쉽게 풀어쓴 글이다. 예를 들어 스모의 승패기록 데이터를 분석해 선수 간의 담합 정도를 추정하거나 낙태의 합법화가 범죄율을 하락시키는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비경제학적으로 보이는 현상을 경제학적 분석도구를 이용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과학성을 비과학적 현상에 접목시킴으로써 경제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학문적 공헌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레빗의 연구가 그 과학성을 유지하고 있는지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 독자는 반드시 균형 감각을 가지고 읽기를 권한다.

『관용』, 핸드릭 빌렘 반 룬 지음, 이혜정 옮김, 서해문집

김도균 교수(법학부)

최근 관용을 주제로 한 책들이 많이 소개됐지만 이 책은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던 당대 지배정신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해학이 독자를 즐겁게 해준다. 재미있는 예화들을 통해 “공적인 불관용의 광기가 다하면 사적인 불관용이 시작되고, 관이 처형을 그치면 린치가 시작”되는 불관용의 역사를 보여주면서도 저자는 건강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모든 불관용의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풍자의 대가답게 “사업이 관용을 낳는다”는 실용주의적인 명제로 관용의 역사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저자의 견해는 곱씹을수록 그 맛이 무궁무진하다. 그 맛을 많은 학생들도 즐기기를 바란다.


『코스모폴리스』, 스티븐 툴민 지음, 이종흡 옮김, 경남대학교 출판부

홍성욱 교수(생명과학부)
서구의 자연과학과 관련지어 근대성을 성찰한 책. 지금 우리의 시대가 탈근대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는 보통 근대성의 철학적, 문화적, 경제적 측면에 대한 분석에 의존한다. 이러한 논의에서 빠져있는 것이 근대성과 ‘근대 과학’의 관계에 대한 통찰력 있는 해석이다. 과학철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인 툴민은 데카르트-뉴턴과 같은 자연철학자들에 의해 완성된 근대적 우주관(cosmos)과 홉스 등 정치철학자들에 의해 완성된 근대적 정치체계(polis)의 결합인 코스모폴리스(cosmopolis)가 인간의 합리성이라는 것을 무척 좁은 범주로 제한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그는 이성/감성, 육체/영혼, 주체/객체를 철저하게 구별한 데카르트의 합리성으로 상징되는 근대성의 승리 이전에 몽테뉴와 초기 베이컨이 지금 우리가 ‘탈근대’라고 부르는 세계관을 제창했음을 주장한다. 조금 어렵지만, 과학-철학-사회의 관련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하는 책이다. 

『황금가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로버트 프레이저  지음, 이용대 옮김, 한겨레신문사

전경수 교수(인류학과)
젊음의 앞길을 막고, 젊음에 절망을 안겨다 줄 수 있는 것은 상상력의 빈곤과 결여다. 세상살이는 살아가는 것일진대, 그 살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다단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은 제임스 프레이저가 지은 『황금가지』다. 이 책은 현재까지 탄생한 인류학자들 중에서 최고봉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말리노브스키로 하여금 인류학에 입문하도록 이끌어낸 책이기도 하다. 모두 13권으로 엮어진 이 책은 세상 곳곳의 삶들을 꿈처럼 그림처럼 그려내고 있다. 이승뿐만 아니라 저승에 관한 이야기들도 삶이라는 영역 속에서 등장함이 다반사니, 상상의 나래를 펴지 않으면 읽어낼 수 없는 책이다. 곰과 별과 풀과 물고기와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 민속지의 보고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한권으로 압축된 축약본만이 번역돼 있으나, 동면하는 젊은이들의 상상력 발동에는 손색이 없을 만 하다.       

『이런, 이게 바로 나야!』,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다니엘 데닛 지음, 김동광 옮김, 사이언스북스

박현섭 교수(노어노문학과)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는 ‘나’는 또 무엇인가? 남들에게도 이런 ‘나’가 있을까? 그저 그런 척만 하고 있는 허깨비들은 아닐까? 강아지나 고양이도 자아를 갖고 있을까? 언젠가는 스스로 판단할 뿐만 아니라 느끼고 경험할 수도 있는 로봇이 출현하게 될까? 그 로봇도 ‘나’에 대해서 생각할까? 살면서 이런 질문을 한 번이라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과공부에 바빠서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이 질문들이 방학 동안 마음속에서 다시 고개를 내밀면 이 책과 함께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보자. 인지과학 분야의 석학인 저자들은 이 책에서 자칫 딱딱한 철학적 장광설로 전락할 수 있는 ‘나’에 관한 질문들을, SF와 블랙 코미디를 넘나드는 신나는 놀이로 바꿔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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