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안 국회 통과 논란

1년여 동안 표류해오던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안과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중개정법률안(비정규직법안)’이 지난 1일(목)부터 국회에서 심의되기 시작했다.

현재 주로 논의되고 있는 안은 지난달 30일(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내놓은 수정안으로, ‘기간제 사유제한 포기’, ‘불법파견 적발시 고용의무’ 등을 담고 있어 기존 정부안에 가깝다. 이 안에 대해 재계와 한나라당은 “기업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 주고 비정규직 고용을 지나치게 규제해 실업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이유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없는 정부안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당은 이 수정안을 기반으로 올해 안에 반드시 입법을 성사시키겠다는 입장인데다 한나라당도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국노총은 기자회견에서 “한시라도 빨리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있도록 미흡한 방안이라도 통과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며 기존 노동계 요구에서 후퇴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이해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만이 감지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표적 조직인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는 같은날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노총 수정안은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일방적 조정안”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내 비정규노조연대회의의 한 관계자도 “한국노총 지도부의 결정을 따르겠지만 비정규직 대표자와의 협의없이 결정된 수정안의 내용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단체들이 이렇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노동계가 그동안 비정규직법안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해온 주요 요구사항들이 한국노총 수정안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출산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기간제 노동자 사용을 허용해 무분별한 기간제 노동의 확산을 막는 ‘사유제한’ 도입을 요구해왔으나 수정안에는 이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다. 수정안은 다만 ‘사유제한 없이 기간제 노동자를 2년까지 사용할 수 있으며 이를 초과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사용기간을 제한했다. 그러나 높은 숙련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노무직이 현재 비정규직의 대부분임을 감안할 때, 사측이 계약직 노동자를 2년 사용한 후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보다는 해고한 후 다른 사람을 또 다시 2년 계약직으로 고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노동계의 중론이다.

또 불법파견 판결이 난 경우에 대해 노동계는 파견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법률적으로 강제하는 ‘고용의제’를 주장해 왔지만 수정안에는 정규직화하지 않고 과태료만 내도 무방한 ‘고용의무’가 명시됐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은 “지금 국회에서 고용의제를 관철시키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으며 향후 법개정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해명했다.

차별시정 청구 시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차별입증 책임을 부과하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조항을 일부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노총 수정안이 비판받는 것은 ‘입법할 때 제대로 된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노동계의 요구를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철폐현장투쟁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호동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연맹 전 위원장은 “노동계에 불리한 사안이 일단 법제화되면 향후 개정ㆍ폐지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지난 1997년 입법된 정리해고제 등 여러 사례에서 볼 수 있다”며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고착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지금의 입법 시도는 마땅히 저지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민규 기자 scv2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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