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는 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다. 갓 스물에 자신을 임신한 어머니를 두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아버지의 얼굴을 해마다 까맣게 잊어가며 자신과 꼭 닮은 어머니와 한 집에 살았다. 그러나 S는 내게 자신은 어머니와 ‘가족’이 아니라 했다. 몇십 년째 자신을 혼자 기른 어머니는 호주가 될 수 없는 여성인지라 ‘동거인’이라는 세 글자가 서류마다 찍혀 있다고 하며 S는 서글퍼했다. 그러던 S에게도 이제 ‘가족’이 생긴다. 호주제가 사라지고 새 신분등록제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S와 그의 어머니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쉽게 되찾을 수 있을까.

지난 11월 4일 법무부는 ‘국적및가족관계의등록에관한법률안’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신분등록제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동안 각계의 노력으로 호주제가 폐지된 것에 대한 대안이다. 그러나 법안을 들여다보면 법무부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새 법안은 가족 내에 존재하는 권위주의와 가부장적 사회를 민주적으로 바꿈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평등하게 대우하자는 호주제 폐지론을 잘 포장된 단어로 왜곡하고 무시한다.

새 법안에 따르면 기존에 대법원이 담당했던 신분 등록·증명 업무는 이제 검찰 지휘권을 지닌 법무부가 맡게 됐다. 이는 수사 업무 등에 개인 정보가 임의로 유용될 염려가 더욱 커지는 것이다. 또한 기존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배우자 부모의 정보까지 ‘상세 증명서’라는 명목 하에 드러난다. 이를 두고 법무부는 남녀평등을 고려하는 차원의 조치라고 하지만 법안은 오히려 남녀차별을 존속시키는 내부 모순을 지닌다. 자식이 ‘어머니’의 성을 따를 경우에는 취지와 사유를 담은 신고서를 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나,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것은 이례적 사유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씨’는 남자한테만 있으므로 당연히 아버지 성을 따라야 한다는 고루한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S에게 있어 당연히 어머니는 ‘가족’인데도 국가는 그에게 ‘왜 너희가 가족인지’를 물어 보겠다는 것이다.

모든 일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 그 일을 시작한 이유와 취지를 잊지 말고 끝까지 지켜야 한다. 이번에 예고된 법안은 평등과 개인 정보 존중이라는 ‘초심’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의 쓴 소리와 대체안 개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수현 농경제사회학부·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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