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로 축축한 거리 위의 시체들이 보인다

비극의 서막이 자랑스레 열리고 슬픔은

전선을 타고 내려와 내 마음을 감전시킨다

시계바늘은 이미 서녘으로 기운 지 오래, 어느덧

도시의 불빛 사이로 검은 비가 한창이다

탁자 위의 촛불은 민망함을 깜빡임으로 대신하고

날은 점점 무더워져 의식조차 흐물거린다

부끄러움의 윤곽을 찾아보려 해도

칠흑 같은 의식 속에선 그림자조차 무색하다

나에게는 곳이 없다, 쉼 없는 추락(墜落)만이 있을 뿐이다

기억을 찾아 한없이 표류하는 숱한 설렘들은

이 공간 속에선 한숨뿐이다

색채를 더해봐도 그리움은 무채색이다

문득 카페 종업원이 내 슬픔의 종막을 재촉하며

회상의 무대 위로 커튼을 드리운다

문득 밖을 보니 거리 위 시체들도 점차 그 숫자가

쉬워진다, 이미 난 지칠만큼 지쳤다

성급히 탁자 한 켠에 기억을 쓸어 뱉는다

그리고 오늘을 내 오랜 치부마냥 품에 안고 나가

고의적으로 퍼붓는 빗속에 분실할 것이다

그리고 얇고 공손한 혼잣말로 떨림을 대신한다



그 해 여름, 당신을 만났던 적이 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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